젊은이 북적대던 춘천 문화의 산실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봉황명의 우피조양(鳳皇鵈矣 于彼朝陽), 봉황이 운다. 저기 아침 해 뜨는 곳에서’ 

중국 <시경>에 나오는 시구다. 봉황이 산다는 이야기가 깃든 봉의산이 있으니 그 아랫동네는 ‘우피조양’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양동’이라 불렀다. 이 지명은 ‘아침길’이라는 도로명으로 남아 있다. 조양동과 효자동 사이로 흐르는 하천 위에 구름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는 구룡다리(구름다리)라 불리다 운교(雲橋)동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조양동의 ‘조’와 운교동의 ‘운’을 합쳐 조운동이라는 행정동이 탄생했다. 지도상으로 따지자면 동부교회-약사천 위쪽 옛 춘천우체국 자리-동부시장-동부동치안센터 맞은편 안쪽을 모두 포함하는 춘천의 옛 도심이다. 

그중에서 명동과 춘천시청 사이에 있는 상가를 1990년대부터 ‘새명동’이라 했다. 명동 맞은편에서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었기에 상인들이 새로 지은 이름이다. 명동처럼 번화해지고 싶다는 소망도 담겼다. 

1950년대 춘천 문화의 산실

여기는 춘천 문화의 산실이다. 1956년 춘천에서 최초로 700석 규모의 신식극장이 생겼다. 소양극장은 영화 상영은 물론 공연과 행사가 줄을 잇던 춘천 문화의 중심지였다. 1987년에는 피카디리 극장으로 이름을 바꿨고 뒤이어 아카데미 극장도 문을 열며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새명동은 옛 춘천여고, 유봉여고, 춘천고, 성수여고, 성수고 등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들의 중간쯤 되는 위치다. 당연히 늘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1968년 문을 연 독일제빵(現 독일제과)은 인기 맞선 장소였다. 1980년대에 가서는 학생들의 미팅 장소로 애용되었다. 고교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가볍게 ‘한턱 쏘는’ 곳이기도 했다. 접시에 빵을 쌓아놓고 먹던 시절이었다. 독일제빵에서 처음 만난 남녀는 중국집 ‘희래등’으로 향했다. 중국식으로 지어진 빨간 색 3층 건물은 동화 속 세상 같았다.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한 손으로 날라주는 짜장면은 유독 맛있었지만, 빨간색 페인트가 느리게 벗겨지던 ‘희래등’ 건물은 어느새 사라졌다. 

1990년대 2030 핫 플레이스

새명동은 회식의 중심지였다. 시청 바로 앞 ‘유일관’에는 기관장들의 휴식공간이 있을 정도였다.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결혼식, 회갑연 등 잔치와 기관 회식으로 늘 들썩들썩했다. 증·개축을 거듭했지만 지금도 옛날 골조와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전골로 유명했던 ‘퇴근길’도 이 동네의 명물이었지만 최근 모습을 감췄다. 관청이 가까워 여관과 술집도 많았다. 지금의 주차장 부지가 대부분 여관 자리다. 

1990년대에는 ‘톰**’ 등 당시를 풍미하던 탑 패션브랜드들이 거리를 메웠다. 당시 유행하던 락 카페도 어깨를 걸었다. 밤이 되면 입구를 개방한 락 카페에서 가슴 뛰는 음악이 둥둥 울려왔다.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었다. 골목 끝에는 나이트클럽까지 생겼다. 춘천에서 주먹깨나 쓰는 패들이 클럽 입구를 지켰다. 

2000년대 락 카페와 나이트클럽 문화가 퇴조하며 새명동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한때는 공무원들에게 인기 좋은 고급 패션 브랜드가 즐비했다. 요즘은 점심 먹기 좋은 맛집이 줄줄이 서 있다. 상인들은 새명동을 ‘좋은 동네’로 만들자는 취지로 ‘조운동상점가상인회’를 구성하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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