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방문 / 장일호 지음 / 낮은산

장일호 작가는 <시사IN> 기자다. 깊이 있는 탐사보도를 쓰는 기자이자, <시사IN> 유튜브 개척자로서 사회적인 이슈를 매개로 대중과 만나온 그가, ‘스스로 드러나는 일에 수줍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가 쓴 최초의 에세이다. 아직은 젊은 여성이자 기자인 인간 장일호의 생로병사에서 희로애락까지 모두 발가벗겨 까놓고 모두 보여주는 에세이이다.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능수능란한 글들이 저자의 왕성한 독서력을 보여주는 책들의 인용들과 함께 어우러져 고개가 계속해서 끄덕여지는 그런 책이다. <슬픔의 방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난, 가족, 여성, 직업윤리 등 매우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지만, 이번에는 여성의 층위에 맞춰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했고,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지만, 자신이 아동 성폭력 ‘생존자’이자, 유방암 투병자임을 서술하는 부분들은 이 책을 마냥 파란만장했던 개인적인 경험의 회고에만 머물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읽는 내내 불편하고, 고민하고 또 생각하게끔 우리의 등을 떠민다.

“고통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사회다. 수치심은 비밀 안에 싸여 있을 때나 존재한다.” <슬픔의 방문>

작가는 부천 성고문 사건 속 ‘권 양’이 권인숙 교수가 되어 자신의 눈앞에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과거가 자신을 반드시 망가뜨리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폭력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있을 때, 그 어느 것도 사소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풍경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의 이야기도 타인을 살리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가 되었다. 

“실패하고 실수해야 잘하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된다고. 두렵다면 함께 망해 주겠다고,  그러니 우리 더는 조심하지 말자고 손 내밀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나이 먹는다면 뒤에 오는 여성들에게 지금보다는 덜 미안할 것 같다.”<슬픔의 방문>  

여성이 사회적으로 유력한 영역에 진출하면 그 능력치와는 무관하게 ‘섹슈얼리티’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일은 매우 흔하다. 외모 비하 혹은 찬사 그리고 성희롱이 이어진다. 특히, 정치에서 유망한 여성에게는 정치를 잘할 것인가에 대한 검증보다 과거 사생활을 매도하는 일이 무슨 공식처럼 가해진다. 미혼이니 아니니, 이혼 사유가 누구에게 있었다느니, 결혼 전 예명이 뭐였다느니 식의 저열하고 시대착오적 ‘수치심’을 조장하는 공격이 이어진다. 

책에서 작가는 <페미니즘을 팝니다>의 앤디 자이글러의 문장, ‘성평등이란 단순히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커다란 실패를 허용하는 것.’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리고 새로 생긴 장래희망이 ‘같이 망해주는 사람’이라 덧붙인다. 여성의 커다란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는 과거 지나온 길을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경험으로 인정하고, ‘수치심’을 조장하는 수준 낮은 공격에는 기꺼이 같이 망해주겠다고 나서는 이가 많은 그런 곳이 아닐까. 우리도 기꺼이 같이 망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난과 슬픔 그리고 기자로 겪는 여러 층위의 삶을 담담한 주장과 함께 그려내어,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슬픔의 방문>을 권하고 싶다. 

강은영(책방 바라타리아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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