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은 일본의 주장만 관철된 일방통행 외교참패로 기록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한국의 국익과 일본의 국익이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며 향후 경제, 안보, 민간 교류 부문의 성과를 부각했으나, 국내 여론은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이런 평가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역대 최장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 직접 설명에 나섰다.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TV로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23분간 모두발언으로 설득에 나섰다. 글자 수로는 5천700여자(원고지 기준 52매)에 달하는 이례적으로 긴 발언이다. 그러나 오히려 전국적으로 시국선언과 시위가 잇따르는 등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여론은 더 악화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회담을 하고 왔길래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인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 간 교차 방문(셔틀 외교) 재개, 일본의 반도체 첨단 소재 수출규제 완화, 양국 재계 미래파트너십 기금 창설,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 정부 간 소통 강화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최대 관심사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한 사죄도 없고,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 등 일본 쪽 성의있는 호응이 전혀 없는 퍼주기만 한 빈손 회담이었다. 일본 총리는 회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를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표현하며 직접적인 ‘사과’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두 정상은 일본 가해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못 박았다. 윤 대통령은 대법원이 정부 입장과 다른 판결을 했다며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반복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독도 문제, 원전 오염수 방류도 논의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대통령인가? 그러니 국민들 사이에는 일본 영업사원 1호니 들어오지 말라느니 하는 힐난이 이어지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는 사실 이미 3·1절 기념사에서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이례적으로 1,022자의 짧은 분량의 기념사를 남겼다.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발언은 일제 침략이 우리 탓이라며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친일파의 논리와 닿아 있다. 다음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3달 후인 그해 5월 30일 매일신보에 실린 을사오적의 수괴 이완용의 경고문의 일부이다. 

“일한병합으로 말하자면 당시에 안으로는 구한국의 형편과 밖으로는 국제관계로 천만번 생각해 봐도 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순리하여 동양평화가 확보되는 것이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로 일한합방이 단행된 것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집권 여당의 역사 인식과 회담 결과를 규탄한다. 5년 단임의 정부가 5천년 역사의 정체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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