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 이사장 

미국 CIA의 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의혹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도청도 도청이지만, 이 사건을 대하는 대통령실의 태도가 더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경악스럽다. 당장 “도청에 선한 의도가 어디 있냐”는 힐난이 쏟아진다.

예나 지금이나 첩보는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 온갖 첨단장비가 동원되지만, 옛날에는 모든 정보가 사람에게서 나왔다. 몰래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세작’·‘간첩’·‘첩자’·‘간자’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손자병법》 〈용간편〉에는 간자의 역할에 대해 “먼저 안다는 것은 귀신에게 기댈 수도 없으며, 일의 표면에 의지할 수도 없으며, 추측에 시험해 볼 수도 없으며, 반드시 사람에게서 취해서 적의 상황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 남조시대 송나라의 명장 단도제가 지었다고 알려진 유명한 병서 《삼십육계》 중의 서른세 번째 계책인 ‘반간계’ 또한 첩자를 활용해 적을 속여 반목하게 하는 계책이다.

사마천의 《사기》 〈염파인상여열전〉에는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장인 조사와 그의 아들 조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사는 영민한 아들이 병서와 병법에는 밝지만, 전쟁은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장의 자리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유언했다. 조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던 진나라는 유능한 장수인 염파는 늙어서 두려울 것이 없고 오직 혈기왕성한 조괄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거짓 정보를 흘렸다. 조나라 왕은 이에 혹해 염파 대시 조괄을 총사령관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조나라 40만 대군은 진나라의 함정에 빠져 몰살을 당했고 조나라 또한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미국 CIA의 공작은 영화 속에서 보는 것처럼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이미 오래다. 10년 전 CIA와 국가안보국(NS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NSA가 유럽연합본부는 물론이고 미국에 주재한 38개국의 대사관을 도·감청한 사실을 폭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미국 특별법원이 NSA가 한국을 포함해 193개국의 정부기관을 도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범죄행위에 미국은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다. 지난 12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은 도청 의혹과 관련해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필요한 일”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문제는 다시 대통령실의 태도다. 뺨을 맞고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척이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에게 고가의 보석을 도둑맞고도 오히려 숨기기에 급급했던 부유층의 처지인 모양새다. 일본에 대한 굴욕외교 논란에 이어 도청 논란까지 이 정부의 외교·안보 리스크가 더이상 기우가 아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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