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노정에서 문득 밖으로만 머물던 풍경들이 안으로 향하는 지점이 있다. 3여 년 전에 문득 옛 풍경과 정겨움이 많이 남아 있는 가까운 우리 동네 ‘우두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두동 골목을 수없이 다니며 우두동을 ‘살 만한 곳’이라 읊은 옛 기록들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우두를 그림으로 기록하던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 단편영화의 필름처럼 이어지는 몇 가지 모양으로 우두의 길이 나게 되었다. 그 첫 우두 골목 여행으로 소양1교부터 소양3교로 이어진 강변 옆에 형성된 우두 하리 골목길을 소개하려고 한다.

비 오는 소양1교는 영화 <애수>를 연상하게 된다. 또 안개와 햇살에 의해 다양하게 변주되는 모네의 그림 <워털루 브리지>가 상상되기도 한다. 다리 난간마다 자리한 생명의 전화 문구와 전쟁, 그리고 안개로 이어지는 삶의 우울한 단면들을 생각하며 다리를 건너면 우두동의 다정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다리 건너 바로 15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주참외차가 있다. 4월이면 성주참외차 위로오동나무 꽃이 연초록 버드나무 늘어진 가지 옆에서 진보랏빛 황홀함을 드러내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하늘 아래 나무꼭대기부터 보랏빛 꽃물이 들기 시작했다. 이젠 무심한 익숙함이 자리한 우두동 풍경이다.

성주참외차를 지나 강변코아루아파트를 옆에 두고 우두동 옛 마을로 들어선다. 원래 집터보다 대지를 엄청 더 돋아 올려 지은 아파트 때문에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만 하는 동네는 작은 야생화를 살피듯 자세히 들여다봐야 예쁘다.

골목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초입에 있는 집 뜰 안에는 감나무·대추나무·고욤나무 외에 멀리 벚나무도 보인다. 우두동 집들은 모두 나무를 품고 있어 아름답다. 한여름이면 큰 평상이라도 놓일 듯한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지나면, 빨간 넝쿨장미가 풍성한 집을 만난다. 지난여름, 인적도 없건만 길모퉁이 반사경에 비친 제모습에 취한 듯 다투며 피어난 넝쿨장미의 붉은빛은 선연해서 골목의 고요가 문득 낮은 슬픔으로 가슴속에 자리했었다.

골목에는 옛 구멍가게의 흔적들이 정겨움을 더한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예은상회’, 딸부잣집 ‘공주상회’는 가게를 그만둔 지 20년이 다 돼가는데도 간판은 그대로이다. 출입문 유리에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스티커가 점방문 닳도록 드나들던 동네 꼬마들의 발걸음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우두동 골목에는 골목 카페도 있다. 각양각색의 의자가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배치되고 커피는 담을 너머 픽업해야 하고 메뉴는 봉지 믹스커피 하나다. 이곳에서 청춘과 노년을 고스란히 맞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골목 사랑방이다.

골목을 깊이 들어서면 파밭이 아름다운 집을 만난다. 하늘조차 황사로 회색빛으로 드리운 봄날, 녹색의 파밭에 빠져있을 때 후드득 새 두 마리 날아간다. 파밭도 이렇게 유혹적이니, 우두동의 모든 것이 오늘도 여전히 설렘이다.

강낭콩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어느 날 골목집 담벼락에 핀 빨간 강낭꽃 덩굴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날은 그 빛이 가슴속에 붉은 덩굴을 이루며 자리했었다. 담벼락이 사계의 캔버스인 집도 있다. 이 집은 여름이면 머위는 나무처럼 키가 크고, 깻잎은 하룻밤에 한 장씩 식구를 늘리며, 고추나무엔 고추보다는 꽃이랑 잎만 무성하다. 

우두동 골목마다 꽃과 나무가 무성한 집들을 보면 옛사람들이 집 안을 가꾸는 마음과 그 정성이 느껴진다. 이제 낮엔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골목인데도, 골목에 어떤 화분보다 더 고운 파 화분이 자리하고 있고, 봄이면 여전히 집들 사이 밭들엔 파종이 이루어져서 각종 작물이 키를 다투며 피어나곤 한다. 

아직도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옛 흔적을 간직한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우두 하리 길은 끝나고 소양3교를 넘어오는 큰 도로를 만나게 된다. 몇몇 음식점과 철물점이 대로변에 위치하고, 길 건너편에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감자수제맥주로 유명한 ‘감자아일랜드’가 있다. 늦은 오후에 우두동 골목여행을 시작했다면 오래된 골목을 나와 젊음이 새로 우두동에 터를 만들어 가는 ‘감자아일랜드’에 들러 맛있는 안주에 ‘우두동맥주’라 이름 지어진 맥주 한잔 하는 것도 좋겠다.

원미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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