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꽃이 무궁화가 맞는지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반도 전체에서 피고 지는 진달래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는 이념적 대립의 산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1920년대에 차상찬이 쓴 <조선 각지 꽃 품평회> 기사는 의미가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조선의 대표적인 꽃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무궁화를 조선의 대표적인 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진달래가 조선을 상징하는 꽃과 같은 느낌이 있다. 진달래는 빛깔이 아름답고 향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조선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어서 여러 사람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애착심을 갖는 까닭에 조선에서 꽃이라고 하면 누구나 먼저 진달래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의 봄에 만일 진달래가 없다면 달 없는 어두운 밤, 태양 없는 북극보다도 더 쓸쓸하고 적막하여 그야말로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게 느낄 것이다. 조선사람으로 외국에 가서 봄을 만날 때 먼저 진달래가 보고 싶고, 또 진달래를 본다면 몸은 비록 외국에 있어도 마치 고국에 돌아온 것 같은 반가운 생각이 난다. 그것은 그냥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누구나 실제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만약 춘천에 댐이 없었고 예전처럼 소양강과 자양강이 만나 신연강으로 흐르는 상태였다면 삼악산은 아마 훨씬 웅장하고 큰 산이었을 것이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우뚝 솟아 건너편 문암(門岩)을 지켜봤을 위용을 생각하면 옛 모습이 새삼 궁금하고, 보고 싶다. 봄철 진달래가 만발한 삼악산의 붉은 절벽을 차상찬은 <조선 각지 꽃 품평회>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강원도에는 원래 산이 많은 까닭에 어떤 옛사람의 시 “사면의 푸른 산 모두 진달래꽃이 만발하다”라는 말과 같이 곳곳에 진달래가 많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춘천 삼악산의 진달래가 가장 볼 만한 것 같다. 삼악산은 원래 암석으로 된 웅장하고 큰 산으로 한강 상류에 있어서 잡목이 울창한 가운데 진달래 나무가 특히 많아서 높이가 3미터가 되는 것도 있는데 꽃이 필 때는 산 전체가 모두 꽃밭이 되고 그 모습이 또 강에 비치면 강 또한 꽃 강이 되어, 위아래가 꽃의 세계로 변하여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다만, 아직 교통이 불편한 까닭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옥산포를 아시는지? ‘무른 담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지금 인형극장과 고구마섬 일대에 배가 드나들고 내가 어린 시절에서 고슴도치섬 가는 배가 있었다. 소양강과 자양강이 모여서 물이 많고 춘천에 유명했다는 재첩 등을 채취하는 어부들이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그 옆 우두벌은 배나무밭 천지라 봄날에는 하얀 배꽃으로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풍경을 <조선 각지 꽃 품평회>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조선 전체를 통해 배꽃이 많기로는 춘천의 우두평야와 ‘무른 담이’일 것이다. 상·중·하 세 개의 마을 수백여 호 집마다 배나무가 5주 또는 10주씩 있다. 꽃이 필 무렵이면 온 마을이 모두 배꽃 세계로 변하여 드넓은 평야(주위 삼천리가 평지)가 마치 ‘천 리 장강’ 넓은 가물에 밝은 달이 비치고, ‘삼천 대지’에 흰 구름 밝게 빛나는 듯하여 정말로 화려하고 순수하다. 어떤 시인이 삼월 배꽃으로 우두 벌이 하얗게 되었다고 하고, 또 춘천민요에 ‘무른 담이’ 처녀는 참배 장사로 나가니 얼굴이 희어서 배꽃이라 … 한 것도 이것을 찬미한 것이다.

잃어버린 풍경은 항상 마음을 아프게 한다. 춘천의 지금 모습이 정말 최선일까? 차상찬의 글을 읽으며 물과 사람들의 영역이 지금처럼 나누어져 있는 상황이 새삼 아쉽다. 발췌한 글은 1929년 4월 1일 발행한 《별건곤》 제20호 <조선 각지 꽃 품평회>라는 글을 ‘차상찬 읽기 시민모임’에서 현대어로 윤문한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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