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몹시 빠르게 흐른다. 낭만이라든지 호기라든지 치기라든지 젊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이 번쩍거리고 세련된 것들 속에서 촌스러움으로 밀려나고,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아스라이 지나치는 그림들도 옛날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 한 장처럼 빛이 바랬다. 

 

하늘이 낮게 내려오고 간간이 비 뿌려대는 오후 막연히 무언가 잃어버린 시간 한 자락을 찾아보고 싶어 서성거리다 나선 곳.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옛 강촌역. 기차가 멈추면 기타를 메고 커다란 녹음기를 든 젊은 청춘들이 우르르~ 내려와 불야성을 이루던 곳. 시간이 홍수처럼 휩쓸고 지난 자리에 흔적만 남아 시간 저편의 기억을 붙잡아 당겨보고 싶은 사람들이 가끔 찾아드는 곳. 레일바이크에서 내린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

그래도 아직은 문화 마을처럼 곳곳에 정겨운 시간의 잔재들이 남아있어 고맙기도 하다. 옛 강촌역을 지나 역 아래 강변길로 접어든다. 변하지 않은 것은 흐르는 물길.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의 지류가 삼악산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으로 흐르고 있어 반갑다. 저곳에서 텐트도 치고 모닥불도 피우고 수영도 하고 왁자지껄 즐겁게 지내던 그 젊음들이 뿜어내던 에너지가 지금의 이 시대를 또 만들어 냈을 테다.

갈대가 자라면 바람결에 결 곱게 흔들리는 갈대숲 옆을 흐르는 강줄기. 헬멧과 고글을 쓰고 자전거를 타기에 완벽한 복장으로 깊은숨을 내쉬며 모처럼 여유롭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달리는 지금 저 젊은 에너지들이 또 다음 세대를 만들어 가겠지. 여유롭다. 강촌에서부터 내려와 지나는 강변길에서 드는 생각이다.

문득 은사시나무가 떠오르던 백양리역이 궁금해졌다. 왜였을까 모르겠지만 백양리라는 지명을 들을 때면 언제나 은사시나무가 떠올랐었다. 그곳의 철길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도질 무렵 바로 또 옛 백양리역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얼른 길을 바꿔 옆길로 든다. 옛 백양리역 앞에 주차장이 가지런하다. 철길은 그대로고 레일바이크 한 대가 끊어진 선로 위에 서 있다. 루피너스가 아네모네와 어우러져 마당을 예쁘게 만들어주고, 쉴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놓여 있어 햇살 좋은 날엔 잠시 앉아 텀블러에 담아 간 커피 한 잔 마시기에 참 좋다.

옛 백양리역은 섬 역사(驛舍)라고 했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갈림길에 섬처럼 놓여 있는 유형의 작은 역사. 지금은 춘천시에서 아주 작은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긴 의자에 곰돌이 인형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어 한편 정겹기도 하지만 한편 지나간 옛이야기 같아 아쉬운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건너편 철길은 신작로. 선로가 없는 흙길이다. 

 

걷기에 맞춤하다. 옛 백양리역에서 현 백양리역까지 2.2Km다. 30분 정도 소요되는 포장되지 않은 한적한 산책길이다. 반대편으로 또 2.2Km를 30분 걸으면 옛 강촌역이라고 한다. 기차가 달리던 길을 터벅터벅 걸어보는 기분은 갈 수 없는 시간 저편을 건너다보는 느낌이다. 바람 불면 흙먼지 살짝 일어나는 한적한 그곳에서 신구세대의 교체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또 그대로 어느 것도 나쁘지 않다. 지나간 시간이 문득 그리워지는 시간, 바쁜 일상을 벗어던지고 여유 한 잔 맛보기에 참 좋은 곳으로 가는 기차가 당도하는 역 강촌 옛 백양리역에 잠시 내려섰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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