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설립돼 1937년 끝내 문 닫아

“춘천 유일의 사학 정명여교의 비운”

“이사회의 고심도 수포로 돌아가 필경 폐교키로 결정?”

《조선일보》 1937년 3월 11일 기사 편집.

1937년 3월 11일, 《조선일보》는 이와 같은 제목으로 꽤 비중 있는 기사를 내보냈다. 춘천 유일의 사립학교인 정명여학교가 폐교의 운명을 맞게 됐다는 기사였다. 당시 정명여학교 폐교는 춘천에서 꽤 큰 이슈였던 것으로 보인다. 

폐교 논란은 이미 1934년부터 시작됐다. 《동아일보》 1934년 2월 16일 기사에 따르면, 폐교에 직면한 학교는 춘천정명여학교뿐이 아니었다.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경영한 홍천정숙여학교와 가평정희여학교, 그리고 인제정의여학교까지 모두 4개 여자 초등학교가 1934년 12월까지 폐교한다는 소식이었다. 

학교 관계자들로서는 망연자실한 일이었다. 당시 1년 유지비는 1천600원 수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신입생은 더 받지 못하더라도 1년의 경비를 절반으로 줄여 2년을 더 유지해 재학생들이라도 졸업을 시키기로 방향을 정했는데, 어찌어찌 1년을 더 버티다 결국 1937년 봄 문을 닫게 됐다. 

정명여학교는 1908년 10월 5일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인 무아각(茂雅各) 씨가 아동리에 설립했다. 아동리는 교동인데, 현재 봄내극장이 있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설립 당시에는 학교 이름이 ‘기독교여학당’이었는데, 여섯 칸짜리 초가집에서 교사 1명을 초빙해 여학생 7명을 가르쳤다. 1910년 교사 20평을 새로 건축하고 1911년 4년제로 인가를 받아 ‘사립정명여학교’로 이름을 고쳤다.

《조선일보》 1924년 11월 28일 기사 편집.

1924년 6월 대판리예배당을 터에 67평의 새 학교를 짓기로 했다. 대판리는 현재로 보면 조양동 지역인데, 8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가 10월에 준공했다. 70평 남짓한 교사에 운동장이 500여 평이었고, 곳간과 변소가 각각 2평씩이었는데, 공사비는 모두 7천여 원이었다. 그해 11월 22일 신축 낙성식이 있었다.

춘천정명여학교는 1926년 5월 6학년제로 변경했다. 그해 말 졸업생은 41명이었고 재학생은 3학급 59명이었다. 당시 학교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1년에 2천200원이었다(《동아일보》 1926년 11월 28일). 1930년 초에는 소학교를 마치고 중등학교에 유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고등과를 개설하기로 하고 2월 13일 허가원을 제출했다(《동아일보》 1930년 2월 21일). 1931년에는 재학생이 93명까지 늘었다.

이런 춘천 유일의 사립 여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춘천 안팎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경비를 절약해 1935년까지는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폐교를 막지는 못했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는 논설을 통해 “조선이 아니고는 볼 수 없는 초등학교의 입학난은 전 조선적으로 매일같이 각 신문 지상에 입학난! 입학난! 하고 외치고 있으며 각종의 비극이 연출되고 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매일 밀려 나오는 수많은 학령아동과 반면에 학교가 대부족됨은 다시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줄로 믿는다. 현재 우리 조선은 초등학교서부터 학령아동은 반수도 수용치 못하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연령 제한이 되어 연령초과로 입학하지 못하여 일생을 문맹으로 헤매게 되는 불행아가 얼마인지도 모른다”며 당시의 교육 현실에 비분강개를 감추지 않았다(《동아일보》 1936년 5월 12일).

1930년대 중반 춘천지역에는 10개의 초등 교육기관이 있었는데, 입학 희망자가 1천81명인데 비해 실제 입학생은 736명에 그쳤다. 배우고 싶어도 학교가 부족해 배울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그나마 30년 가까이 존속했던 유일한 사립 여학교가 폐교하게 됐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춘천정명여학교를 설립한 선교사 ‘무아각’의 본명은 무스(J. Robert Moose)다. 미국 남감리회 출신으로 1899년 9월 조선에 와서 1908년 춘천으로 이주해 홍천·양구·원주에 교회를 설립했다. 1917년 신병으로 일시 귀국했다가 1921년 11월 다시 돌아와 1924년 가을까지 철원에서 시무한 뒤 중병으로 다시 귀국해 4년간 고생하다 1928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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