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정강원이주여성상담소 상담사
이민정 강원이주여성상담소 상담사

 

춘천의 소양강은 메콩강을 닮았다. 베트남 껀터(베트남의 5대 직할시 중 하나로 전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메콩강 하류 삼각주에 자리 잡고 있다)가 고향인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껀터가 고향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메콩강 이야기를 하면 금방 이해한다.

나는 메콩강 지류인 허우강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남편과 결혼을 결정하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강가를 거닐었다. 지금도 허우강을 따라 높게 형성된 둑과 점점이 떠 있던 섬들이 생각난다. 이곳을 떠나고 나서 이 강을 얼마나 많이 다시 그리워할까. 

아버지는 새벽마다 강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아 오고 가족들은 아버지의 그물에 걸려온 물고기를 손질했다. 우리 아홉 식구의 생계가 달려있던 아버지의 그물은 지금 생각하니 많이도 낡았다. 그물질을 끝내고 돌아온 아버지가 마당 끝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생각, 아버지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팽팽해지던 그물코가 생각난다.

내가 일곱 남매의 막내딸로 한국에 온 지 벌써 9년이 되었다. 처음 춘천이라는 도시를 밟았을 때의 낯섦과 두려움 그리고 막막함이 기억난다. 2014년 11월의 춘천은 춥고, 건조했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눈을 기대했지만, 그해 겨울에 정작 눈은 내리지 않았다. 나는 고향에 가고 싶은 향수병에 시달렸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던 껀터의 몬순 기후, 낮은 구릉과 언덕 그리고 매일 강에서 열리던 시끌벅적한 시장이 그리웠다. 

남편은 향수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곳은 소양강댐이었다. 댐 가득 차 있는 강을 보면서 고향을 추억하라는 남편의 배려였다. 봄이었다. 댐으로 오르는 길에 흰 꽃잎이 날렸다. 껀터에서 본 영화에서 나왔던 한국의 봄꽃이었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한국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소양강 정상에 올랐다. 산으로 빙 둘러싸인 댐은 물을 가득 품고 있었다. 껀터의 강처럼 수상가옥도 없고 수상 시장도 없지만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날리는 꽃잎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 춘천시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외국인 아나운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다. 그 뒤에 가끔 중앙시장에서 외국인 아나운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봄날 중앙시장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은 고향의 할머니와 닮았다. 새벽 강에서 건져 올린 그물에서 물고기를 나르던 우리 할머니의 굵은 손마디와 같다.

춘천의 골목은 좁고 길다. 가끔 남편이 자기가 태어난 곳이라며 운교동 골목을 데리고 갈 때가 있다. 햇빛이 파랑처럼 빛나는 골목에서 만나는 낙서는 언니와 내가 껀터의 골목에 그려놓은 낙서와 같다. 켜켜이 이어진 기와 속에서 이름 모르는 풀꽃도 본다. 나도 손을 들어 골목길 담벼락에 나와 아이들 그리고 남편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머무는 곳은 어디나 의미가 된다. 그곳에 나의 삶이 흐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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