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다큐멘터리 〈삼마치〉 감독

이미영 다큐멘터리 〈삼마치〉 감독
이미영 다큐멘터리 〈삼마치〉 감독

사북항쟁 다큐 <먼지, 사북을 묻다> 등 강원도 탄광 노동자들과 다큐 작업을 시작으로, 1996년부터 노동·인권·환경·여성에 관한 기록영화들을 연출·제작해왔다. 영화들은 서울인권영화제 ‘올해의 인권영화상’(2002),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 특별상’ (2002) 등을 수상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토론토 핫닥스·야마가타국제다큐영화제·마르세유국제다큐영화제·암스텔담국제다큐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와 대학에 초청됐다. 

고려대 독문과와 캐나다 몬트리올 콘코디아 대학원 영화제작과를 졸업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과 캐나다 NSCAD 대학 미디어학부에서 여러 해 영화를 가르쳤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다큐멘터리 <초토화작전 Scorched Earth>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다큐멘터리 <삼마치>를 제작 중이며 내년 중 대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삼마치 터널은 횡성군 공근면 상창봉리에 위치하며 홍천과 횡성을 오가는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는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연 알까? 오래 전 이곳에서 벌어진 참극을 말이다.”

다큐멘터리 <삼마치> 제작진이 삼마치 고개를 오르고 있다.  사진 제공=이미영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폭격을 다룬〈초토화작전> 중 일부 장면.  출처=〈초토화작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폭격을 다룬〈초토화작전> 중 일부 장면. 출처=〈초토화작전>

올해는 정전협정 70주년(7월 27일)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많은 진실이 여전히 이 땅의 산하 구석구석에 묻혀있는 와중에 지식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을 파헤쳐 알리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폭격 진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이미영 감독도 그렇다. 그는 지난해부터 춘천과 홍천 등을 오가며 다큐멘터리 〈삼마치〉를 제작하고 있다. 이 감독을 만나 삶과 〈삼마치〉 등 폭격 연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광, 다큐멘터리에 매료되다

어릴 때부터 한국 사회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 시절에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당시 한국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가는 영화감독들처럼 영화를 잘 만들려면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인문학을 전공하며 사회과학동아리에서 활동하고 학생 운동에도 참여했다. 대학을 다닌 1990년대는 김동원 감독의 〈송환〉,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등 사회적 다큐멘터리가 주목받던 시절이었다. 그때 다큐멘터리에 매료되어 다큐멘터리 제작 모임에 들어갔다. 

사북항쟁 기록 후 떠난 유학길

다큐멘터리 제작 모임 선배들을 따라서 1997년 겨울에 사북으로 갔다. 신문 배달로 밥벌이를 하고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작업을 처음 한 게 〈먼지의 집〉(1999)이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북 동원탄좌 하청 제일기업 노동자들의 항쟁 기록이다. 또 〈먼지, 사북을 묻다 : 1980년 사북의 봄〉(2002)은 사북항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로서 광주민주화운동 한 달 전 1980년 4월 사북 동원탄좌의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다 강제 연행과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내몰린 광산 노동자들의 항쟁 기록이다. 이후에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제작·지원이 활발한 캐나다 몬트리올의 콘코디아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초토화작전 Scorched Earth〉(2022)으로 큰 반향

〈초토화작전〉은 보안 해제된 미군 기밀자료와 시청각 자료, 군인과 피해자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벌인 민간인 폭격의 실상을 담았다. 공중 출격 104만708회, 기총사격 1억6천685만3천100회, 네이팜탄 3만2천357t, 폭탄 63만5천여t 등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사용한 폭탄 사용량은 태평양 전쟁 구역에 투하한 폭탄 50만3천t보다 많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해서 한반도에 원폭 대신 마을 전체를 태워 없애버리는 초토화 방식을 택했다. 여기에는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았다. 이는 ‘전시 민간인 보호에 대한 제네바 협약’(1949)을 위반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였다. 미군의 초토화 정책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이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현실에서 진보와 보수 등 이념을 떠나서 이런 참혹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노근리’ 학살은 빙산의 일각 

그렇다. 유가족분 중에 정구도(노근리 평화기념관 관장·노근리 국제평화 재단 이사장) 선생 등의 진상규명 활동이 국내외에 많이 알려지며 정치권을 움직였고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노근리는 1기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추정하고 있는 전쟁 시기 남한에서 있었던 약 1천 건의 폭격 사건 중 일부, 즉 빙산의 일각이다.

〈초토화작전〉으로 못다 한 이야기…‘삼마치 고개’ 폭격

〈초토화작전〉은 한국전쟁 3년 동안 벌어진 민간인 폭격을 개괄적으로 다루며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실제 폭격이 너무 많아서 러닝타임 82분에 상세하게 담을 수 없었다. 깊이 있게 다뤄야겠다고 생각한 몇 사건들이 있었고 그중에 ‘삼마치 고개’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20대 시절 다큐멘터리 경력이 시작된 강원도는 내게 제2의 고향이다. 그래서 삼마치 폭격 같은 끔찍한 일이 강원도에서 벌어졌다는 게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 작업을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홍천과 횡성 경계 ‘삼마치 고개’에서는 무슨 일이

1951년 1·4 후퇴 때 미군은 삼마치 고개를 넘던 춘천·홍천·양구·인제 등 피난민 3천 명에게 네이팜탄을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가했다. 내가 확인한 폭격 사격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희생자가 많았다. 보안 해제된 미군 문서에 민간인 3천 명에게 폭격했다고 분명히 나온다. 민간인임을 알고도 폭격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미군이 기록한 것이 3천 명인데 실제는 얼마나 많겠나? 아마 몇 배는 훨씬 더 많을 거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강원지역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60건을 확정하고 조사했을 당시 ‘삼마치 폭격 사건’도 포함됐다. 

보안 해제된 미군 기록 그리고 증언들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던 중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보안 해제된 한국전쟁 관련 기록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 후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과 자료도 알게 됐고 양국을 오가며 조사를 심화해갔다.

삼마치 고개 폭격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나도 이걸 제작하면서 알게 됐으니 말이다. 민간인 시신을 밟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기록 자체가 많지 않아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는 데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확보한 자료가 큰 도움이 됐고 수소문하고 발품을 팔아가며 생존자를 찾았다. 〈삼마치〉 제작을 하며 현장에 직접 찾아갔고, 지역에 계신 분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생존자 중에는 춘천 사람들도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춘천 사람들이 많이 희생됐고 생존자 중에는 춘천에 사는 어르신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삼마치 고개가 있는 홍천을 비롯해서 인제 그리고 강원도를 떠나서 사는 생존자들도 만났다. 미처 만나지 못한 분들도 많이 있을 거다. 폭격으로 졸지에 고아가 됐거나 장애를 입고 평생을 힘겹게 사신 분들을 인터뷰했는데 공통적인 패턴이 있었다. 처음엔 폭격 상황에 대해 말씀을 잘하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고 힘들어하신다. 기총 사격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쏟아부으며 불바다를 만들었으니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겪었을 것이다. 깊은 기억을 꺼내는 게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우신 거다. 정말 조심스럽게 인터뷰할 수밖에 없다. 천만다행으로 본인과 가족 모두가 다치지도 않고 온전히 살아남은 분들도 있다. 그러니 피난민 규모가 얼마나 컸겠는가?

모르는 건 약이 아닌 병

한국인 특히 젊은 세대라면 이 땅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난해 〈초토화작전〉이 부산에서 상영됐을 때 20대 스태프가 보수정당의 열혈지지자인 친구 몇 명을 초대했다. 다큐를 본 후 그들은 미국에 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홍보까지 거들고 나섰다. 놀랍지 않나? 진보와 보수에 따라 어떻게 평가할지는 본인의 몫이지만 있는 사실 자체를 알 권리와 의무는 있다.

9·11테러 이후 맨해튼의 카페·술집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안 했다. 너무 큰 비극을 겪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서 말할 에너지가 없다. 그동안 한국 사회도 그런 시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70년이 흘렀다. 이제라도 돌아봐야 한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을 아는 것부터 시작하여 진실을 밝혀야 한다. 모르는 건 약이 아니다. 모르는 건 병이다. 삼마치 고개는 삼마치 터널로 바뀌었다. 터널 공사 당시 폭격 희생자들의 유골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많은 이들이 무심하게 터널을 오간다. 이제라도 영문도 모르고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 미국인들에게 ‘BTS’ 말고도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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