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둥글한 수박의 옷 꼭지를 뚝 따고 강릉 생꿀에 얼음을 넣어서 너를 주랴 … 하는 이 도령의 사랑가 한 곡조는 춘향이 아니라도 여름 사람으로 누구나 듣기만 하여도 저절로 속이 시원하고 목에 침이 슬슬 돌 것이다. 그러나 수박은 값이 비싸고 먹는 데 따라 들어가는 것이 많으며(꿀과 얼음 같은 것이 없어도 못 먹는 것은 아니지만) 시원은 하다고 할지언정 참외처럼 배부르게 먹는 것은 아니다. 참외는 수박보다 비교적 값이 싸고 먹기에 편리하고 배가 또한 쉽게 부른다. 수박을 귀족적이요 부르주아적이라 할 것 같으면 참외는 평민적이오 프롤레타리아적이다. 무슨 명물 무슨 명물 하여도 여름의 명물은 참외일 것이다. 외와 호박과 수박과 수세미외가 다 같은 오이류로 우리의 식용이 되는 것이지만 대개는 반찬감이나 군것질감에 불과하고, 유독 참외는 군것질감이 되는 동시에 요기물이 되어 여러 사람이 많이 먹고 많이 아는 까닭에 옛날부터도 여러 오이류 중 특히 참자를 붙인 것이다. 참이라는 말은 진짜 또는 정말이라는 의미이다. 진오이가 오이류 중에는 왕이요 조종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같은 참외라도 지방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서울의 시장에서는 저자도(뚝섬)참외, 시흥 참외, 구(舊)과천 참외, 서산 가마골 참외를 명물로 친다. 아니 명물이라는 것보다는 그 등지의 참외가 서울의 시장을 독점한다. 그러나 맛으로 치면 아무래도 경기 이외의 시골 참외만 못하다. 빛과 외형으로는 물론 좋다. […] 강원도로는 춘천의 참외가 명물이다. 그것은 맛이 좋다는 것보다도 산출이 많은 것이다. 한창 참외 때이면 읍 앞에 앞뜰(前坪)이라는 사방 십 리가 되는 넓은 들이 온통 참외막(속칭 원두막) 천지다. 참외막이 둘러 있는 것이 마치 큰 시장에 노점 들어선 것 같아 저녁때나 밤이면 참외를 먹으러 가는 사람, 팔러 가는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런데 이것은 십여 년 전까지의 일이니까 지금까지도 그러한지 의문이다. 고향의 흙을 밟아본 지도 벌써 사오 년이오, 그곳 참외를 맛본 지도 십 년이 되니 여러 가지가 다 희미할 뿐이다. 

[…] 도회지에서 돈푼이나 있고 호강하는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함경남도 안변이나 석왕사 같은 곳으로 애인을 데리고 피서도 가고 그렇지 않으면 물 맑고 산 좋은 곳에다 정자를 지어 놓고 긴긴 여름에 바둑, 장기, 골패, 화투 같은 것으로 소일을 하고 맥주, 소주, 사이다, 아이스크림, 연계찜, 갈비찜으로 배를 채운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참외막이 유일한 피서지가 되고 오락장이 되며 식도원이 된다. 장기, 바둑도 두고 화투, 투전도 하며 소설도 보고 노래도 한다. 남모르는 남녀의 비밀 관계도 생긴다. 지나가는 행인은 거기에서 더위도 피하고 비도 피하며 김매는 농부들은 거기에서 점심도 먹고 견누리(곁두리 : 농사꾼이나 일꾼들이 끼니 외에 참참이 먹는 음식)도 먹는다. 찌는 듯이 더운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시냇가의 서늘한 바람이 버드나무 숲으로 돌기를 시작하며 수천 백의 잠자리 떼가 저공비행의 대 연습을 하고 매미가 석양 곡을 합주할 때에 동저고리 바람(동옷 바람: 옷갓을 차리지 않은 차림새) 대님도 풀어헤치고 갈대 부채를 휘휘 두르며 삼삼오오 친한 친구가 참외막에 가는 재미는 농촌의 사람이 되어 보지 못한 도회의 사람으로는 꿈에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뿐이냐 달이 밝고 바람이 맑은 밤에 참외막에서 한가하게 불어나오는 단소의 소리는 무엇보다도 맑고 또렷하여 도회의 다른 음악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 

1928년 7월 《별건곤》 통권 제14호에 실은 글로 참외가 여름철 대표 서민 먹거리라는 것을 전국의 참외 주 생산지를 소개하며 주장하고 있다. 후평동 일대의 참외막 풍경을 다른 고장보다 길고 자세히 소개하는 것으로 춘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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