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산은 우두벌에 자리 잡은 산이다. 우두산은 높지는 않지만 신성한 기운이 있어 그 앞의 대지에선 봄마다 새싹이 자라고, 감자꽃이 활짝 꽃을 피운다. 올해도 여지없이 감자꽃은 피고 지고 비옥한 토지에선 감자들이 튼실하게 결실을 맺어 수확하는 농부들에게 기쁨을 안겼었다. 

우두산은 춘천에 관한 많은 옛 문헌과 문인들에 의해 춘천의 상징적인 명소로 기록되어 왔다. 유난히 비옥한 땅에서는 주거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우두산 인근에는 우두동 1, 2호로 명명된 고인돌이 있다. 신석기 시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다. 신석기인의 주거지는 잘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크고 작은 발굴 조사를 통하여 신석기시대 유물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 흔적의 하나로 폴리텍대학 건너편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고인돌이 놓인 정원이 있다. 스쳐 지나가면 그냥 큰 돌이 땅에 박힌 듯 보이지만, 성혈이 선명한 고인돌을 확인하고 나면 그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간절한 염원이 대지로부터 전해져 발끝으로부터 가슴 속까지 작은 전율이 느껴진다. 이 터는 골목 안에 위치한 뜰 안에 유난히 과실나무가 많은 집주인의 소유이다. 

그 집 또한 각종 과실나무뿐만 아니라 인동덩굴 꽃담이 아름다운데, 집주인께서는 역시나 우두영농회장을 지내신 분이라고 했다. 지난해 그분의 부고를 접한 후 올봄 뜰 안에 과실나무들이 많이 사라져 안타까웠다. 과실나무를 돌보는데 많은 전문적인 손이 필요하다면 이런 선택은 아쉽지만 당연한 일이겠다고 생각했다.

과실나무가 많은 영농회장님댁 뒤로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빨간 기와와 녹색 기와를 얹은 두 집이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녹색기와 집은 봄이면 밥알을 튀겨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진분홍 박태기나무가 녹색 지붕과 화려한 대비를 이룬다. 

계절이 익어가면 빨간 기와집 앞 밭에는 밤마다 종소리가 울린다. 범종 같은 꽃으로 피었다가 소리 없이 툭 떨어져 버리는 그 꽃. 촌스럽도록 파란 하늘 아래 빨강과 녹색 두 지붕 그리고 노란 호박꽃. 마치 세상만사 다 통과하라고 세 색깔 신호등 환하게 켜놓은 것 같다. 지지대도 없이 땅바닥에 낮게 자리한 이 호박은 땅호박이라고 한다.

작은 골목을 나와 다시 큰 골목을 걷다 보면 다시 옛 흔적이 많이 남은 집을 만난다. 대문을 사이에 둔 두 집은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지만, 선비를 키운 집답게 기품이 있다. 이 집에서 학자와 공직자를 키워냈다고 한다. 골목 안에는 우두동 사람들만 아는 방앗간도 있다. 이 방앗간은 온 동네 비밀창고다. 앞집 논 소출부터, 뒷집 손녀 돌잔치. 옆집 고추 농사에 건넛집 참깨농사까지…. 속닥속닥 온 동네 비밀을 섞어 기분이 뻥튀기되는 동네 방아를 찧을 뿐이다. 골목 안에서 아직도 대를 이어 활발하게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 부흥방앗간은 떡이 맛있기로도 소문이 자자하고, 주인은 크고 작은 훈훈한 봉사로 부흥방앗간에 또 다른 온기를 심어주고 있다.

부흥방앗간 옆집은 뜰 안에 보리수·자두·사철·두충나무·진달래와 자산홍도 피어나고, 지난해까지도 자두나무 꽃 화사했었다. 마치 대갓집 어여쁜 규수 훔쳐보듯 집안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 집도 올봄엔 나무가 모두 사라지고 뜰이 훤하게 비어, 옆집 택시회사의 명품 밤나무만 더 도드라져 보였다. 아쉬웠지만 그 선택에도 이유는 있었으리라.

이제 골목을 나와 강변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면 머슴빱이라는 상호를 가진 음식점을 만난다. 대문 앞에 독특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문 열려 있으면 영업 중입니다. 닫혀 있다면, 힘들고 지칠 때는 그냥 쉼’

우린 겨우 밥 한 끼 먹고 주인장들의 자유를 얼마나 구속했을까. 문 열려 있으면 밥 먹고 오고, 닫혀 있으면 또 강변을 산책하면 되는 것이고…….

낙지볶음 고봉밥도 맛있을뿐더러, 손을 댄 듯 안댄 듯 자연 정원에 심어진 각종 토종 꽃과 각종 장이 담긴 장독대를 보면 멋지고 개성 강한 주인장의 자유로운 품성을 보는 듯해 기분이 좋아진다. 산책이 마무리되었다면 이제 우두동 맛집 머슴빱에서 자연밥상으로 점심 한 끼 해도 좋겠다.           

원미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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