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아이덴티티 유지하며 원주민의 가려운 곳 긁어주어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지원, 남형우, 전흥우, 오동철, 나철성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지원, 남형우, 전흥우, 오동철, 나철성

 

‘이슈칵테일’이 네 번째 주제로 ‘도시재생사업’을 진단했다. 

도시재생사업은 쇠퇴한 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3년 시작됐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국정과제로 추진되며 막대한 공적 자원이 투입됐다. 춘천에서는 2016년 근화소양도시재생사업을 시작으로 약사명동·교동소양·조운동·우두동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됐다. 2024년에 끝나는 조운동을 제외하고 모든 곳의 사업이 종료됐다. 약 9년간 800억 원에 달하는 혈세가 투자됐지만 건물 몇 채만 세워지고 주민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번 자리에는 도시재생사업을 가까이 지켜본 한림성심대 남형우 부총장과 디자이너 신지원 씨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전흥우(《춘천사람들》 이사장)

올해 초 《춘천사람들》이 약사동으로 이사를 왔다. 약사명동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총 217억 원을 들여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됐다. 도시재생에 관한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보면 유·무형적 가치를 재발견하여 경쟁력 있는 도시로 재창조하고 창조적인 일자리를 창출하여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행복한 도시를 만든다는 미사여구로 가득하다. 하지만 약사동 골목 곳곳의 흉물스러운 빈집과 빛바랜 벽화를 보며 막대한 혈세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씁쓸했다. 왜 이렇게 된 건가?

남형우(한림성심대 부총장)

일본에서 탄생한 개념인 ‘도시재생’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즉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과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방지하려는 공공 도시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시작됐는데 기존의 도시재생이 도시 정비의 목적이 강했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는 ‘도시재생 뉴딜’이라는 국책사업으로 추진되며 도시재생 지역에 청년들이 대거 유입됐다. 주체도 주민과 청년으로 나뉘고 창업을 통한 이윤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회하며 지역에 엄청난 자본이 투자됐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거의 모든 사업지역에서는 “도대체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갔나?”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전흥우

왜 이렇게 됐나?

남형우

도시재생사업은 담장 안쪽으로는 돈을 투입할 수 없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원주민들은 낡은 주거환경 개선을 기대했지만, 사업비가 담장 안으로 못 들어가니까 기껏 하는 게 벽화를 그리거나 골목길 조명을 바꾸고 자그마한 주차장 만든 게 전부다. 집수리교실 같은 프로그램도 지속성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럼 그 돈이 어디로 갔냐고? 청년을 중심으로 한 창업이나 문화프로그램 등 소멸성 사업으로 대부분 소진됐다. 

신지원(디자이너·근화동396 ‘작심’)

2021년에 약사동에서 열린 손뜨개 수업에 참여하며 도시재생을 처음 접했다. 동네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문화적으로 엮일 수 있음에 뿌듯했고 이후 생활 공예 공모사업의 보조자로 인연을 이어갔다. 동네만의 고유한 개성과 가치를 자원으로 삼아 지역을 활성화하는데 시간과 인적자원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내가 참여한 손뜨개 프로그램도 종료 후 어르신들끼리 지속해서 만들고 판매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많은 도시재생프로그램이 비슷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춘천사회혁신센터의 ‘소소한동네연구’의 시민연구자로서 도시재생 활성화에 대해 나름의 제언도 했었다.

솔직히 이제는 도시재생에 관심이 멀어졌다. 도시재생 입장에서는 외부 인적자원의 도움, 특히 청년의 참여가 꼭 필요한데 반대로 청년들에게는 도시재생 참여가 그렇게 절실하게 와닿지 않는다. 

남형우

정말 중요한 지적이다. 도시재생에 뉴딜이 결합하며 청년들이 많이 몰리고 단기 소멸성 사업이 난무했다. 어르신들과 청년이 지속적으로 어울리며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발굴하고 공유하는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못했다. 주민 대상 장기간 교육이 불가능하니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해낼 역량도 생길 수 없었다.

내 집과 동네에 뭘 해주길 바라는 주민들은 점점 도시재생사업에서 배제되고 외부 청년들과 사업 관계자 중심으로 소모성 사업만 전개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그나마 도시재생 지역에서 창업한 청년들도 정부 지원금이 끊어지자 문을 닫았다. 전국에 그런 곳이 허다하다.

오동철(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원주민들의 기대와 정부의 목표가 아예 달랐다. 외부에서 새로운 자원을 유입시켜서 지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생각부터 잘못됐다. 또 도시 하나를 새롭게 변모시키는 게 얼마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어느 정부나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고 사업을 매우 짧게 가져간 점도 패착이다.

남형우

도시재생은 결국 토론하고 공감하며 양보하는 자치의 연장인데 현장에서는 노인들과 청년들이 전혀 다른 걸 기대하니까 합의가 어렵다. 문화적인 소양을 지니고 주민, 특히 노인들의 니즈를 잘 이해하며 행정과 조율할 줄 아는 ‘도시재생 코디네이터’가 그런 걸 해야 하는 데 그런 사람이 부족하다. 그러니 자질이 없는 코디네이터들과 용역업체가 찍어내는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전국 곳곳에 넘쳐났다.

나철성(강원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진보적 시민사회도 반성해야 한다. 도시재생은 진보적 가치를 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도시재생사업이 새로운 사회의 모델인 것처럼 몰아갔고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춘천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지자체와 정부만 욕하고 있지 자신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전흥우

결과적으로 건물 몇 개 만 세워졌다. 그나마도 건물 사용 방안을 두고 주민끼리 대립하기도 한다. 도시재생을 다시 ‘재생’할 방법은 없는가? 

남형우

도시재생이 사업적인 개념보다는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발굴하고 주민을 지켜주는 개념으로 가야 한다. 지금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주민을 중심에 놓지 않고 올해 안에 사업비를 소모해야 하는 방식으로는 똑같이 반복될 게 뻔하다. 

문화가 뭘까? 지역이 갖는 고유한 아이덴티티 아닌가? 그런데 문재인 정부 ‘도시재생 뉴딜’이 펼쳐진 지역에서는 하나같이 청년 취향의 트렌디한 문화가 마을을 삼켜버렸다. 어디든지 비슷했다. 도시재생 주체가 주민과 청년으로 나뉘며 주민의 삶과 상관없는 것들로 넘쳤다. 그나마도 이제는 발길이 끊겼다. 전국 최초로 도시재생이 시작되고 도시재생의 모범이라고 치켜세웠던 창원시 마산 원도심 창동을 지금 가보라. 다 허물고 아파트 짓고 있다.

나철성

이제라도 시가 나서 실사를 해서 고쳐 쓸 것인지, 아니면 폐기할 것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길로 갈 것인지 모색할 때가 됐다.

오동철

도시재생에 관한 정부와 지자체의 태도도 바뀔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센터 등의 행정력을 유지·운영하며 사업하는 방식 말고 집을 고쳐주는 등 낙후된 지역 주민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직접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전흥우

주민주도형으로 서서히 발전해 나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외부 인적자원이 협업하며 차근차근 가야 하는데 단기간에 엄청난 예산을 투여해서 이렇게 후다닥 끝내는 사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제라도 점검하고 지역사회에 공론의 장에 올려놓자.

이날 참석자들이 내린 결론은, 도시재생은 지역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주도하는 트렌디한 이벤트가 아니라 원주민들의 가려운 곳을 찾아 긁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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