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천역 뒤 헌책방 ‘아·숨·헌’

손님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널따란 책상.

 

남춘천역 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아·숨·헌’이라는 배너가 보인다. 전면 유리창에 ‘AZIK Used BooK’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내부에 쌓인 책의 모습과 겹쳐 보여 단번에 책방임을 알 수 있다. 서점 문을 연 지 4년 넘은 ‘아직 숨은 헌책방’은 남춘천역을 찾는 외지인들에게는 의외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만 문을 여는 좀 특이한 곳이다. 어쩌다 궂은 일요일에 문을 열기도 한다.

책방 문을 밀면 벨 소리가 요란하다. 책장이 놓인 사이사이로 들어가면 책방 매니저를 만나게 된다. 먼지 냄새 자욱한, 바닥부터 허리까지 켜켜이 책이 쌓인 곳을 예상했다가 깔끔하게 정리된 책과 신선한 공기에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입주할 때부터 구한 몇 개의 책장을 빼놓고는 헌 책꽂이와 재활용 상자, 그리고 와인 상자를 이용해 2만5천 권이나 되는 책들을 가지런히 꽂아두었다.

“저는 책을 안 찾아줘요. 그쪽에 있으니 한번 찾으세요. 헌책은 원래 본인이 찾는 거예요.”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다가 다른 책도 눈여겨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란다. 이런 게 헌책방을 찾는 이유이긴 하다. 손님들은 기차 시간에 맞춰 책을 고르고 널따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 가곤 한다. 제법 단골도 있다. 어느 화천 사람은 10만 원어치 책을 사기도 하고, 나이 지긋한 어떤 사람은 동학 관련 책만 사고, 《빨간머리 앤》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그녀가 나오는 소설을 모두 사서 가기도 한다. 젊은 손님은 주로 시집과 소설을, 노년층은 역사와 인문학을 주로 산다.

아·숨·헌은 알라딘의 인터넷 중고서점이기도 하다. 춘천보다 전국에서 더 알고 찾아온다. 정가의 50~60% 정도로 파는데,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책장 사이사이를 지나다 보면 책의 분류를 알리는 하트 메모지를 볼 수 있다. 게시판에는 ‘어린 왕자’ 그림이 글과 함께 붙어 있는데, 원서와 똑같은 모습이다. 문서영의 《소금편지》, 스펜서 존스의 《선물》 등도 멋진 필체로 소개돼 있다. 글만 있으면 지루하기 마련인데 주인이 솜씨를 부려 그린 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포토존도 있고 방명록도 있다. 지난해엔 춘천문화재단이 공모한 ‘도시가 살롱’에 당첨돼 ‘마음 근력’에 관한 독서 모임을 열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치열하게 살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헌것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요. 색바랜 책에는 추억이 있어요. 헌책방은 젊은 사람에게는 책 문화를,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추억이 살아있는 곳이에요. 오래도록 책방을 하는 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얼마 전에 광장 서적이 문을 닫았다. 서점이 사양길로 가는 중에 아·숨·헌은 확장을 하고 싶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팔고 추억을 팔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헌책방을 만들고 싶다는 매니저의 꿈! 그 포부가 놀랍다.

아직 숨은 헌책방 | 퇴계동 1192 ☎ 033-243-3281

이은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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