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 이사장.

 

1945년 8월 6일, 불청객 ‘꼬마(Little Boy)’가 일본 히로시마를 강타했다. 3일 뒤에는 ‘뚱보(Fat Man)’가 나가사키를 폐허로 만들었다. 길이 3m, 지름 0.7m, 무게 4.5t의 ‘꼬마’는 히로시마 인구 약 35만 명의 40%를 죽거나 다치게 했고 도시의 67%를 폐허로 만들었다. 비슷한 길이에 지름이 두 배인 ‘뚱보’는 나가사키 전체 인구 약 24만 명의 30%를 살상하고 역시 도시의 40%를 폐허로 만들었다. 우라늄으로 만든 ‘꼬마’는 TNT 1만5천t, 플로토늄으로 만든 ‘뚱보’는 TNT 2만t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가졌다. 인류 최초의 핵무기인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은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핵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미국은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에 자극받아 뉴멕시코주의 외딴 도시 로스 알라모스에서 비밀리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원자폭탄을 꼭 써야 했는지, 그리고 전범국 일본의 항복이 원자폭탄이 결정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 전대미문의 살상무기를 개발한 사람들로서는 이것들의 실제 효과가 어떨지 상당히 궁금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1930년대 일단의 과학자들이 원자핵이 중성자에 의해서 둘로 분열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원자핵이 나뉘면서 방출되는 중성자가 또 다른 원자핵과 충돌하면서 연쇄적인 핵분열을 일으키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이렇게 핵무기가 탄생했고 핵무기의 위력을 직접 경험한 뒤 1950년대에 들어서며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말하자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다.

1951년 미국 아이다호 국립원자력시험장에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EBR-1이 세워졌고, 1952년에는 최초의 핵잠수함인 노틸러스호가 건조됐다. 1954년 구소련의 오브닌스크에 5천kw급의 첫 상업용 원전이 건설된 이후 지금까지 지구상에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은 500여 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에는 22기가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에너지라는 원자력은 인류 대재앙을 초래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 체르노빌에서 역대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2011년 3월 11일에는 동일본 앞바다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정전사태가 일어나면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지금까지 모두 2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지금은 이 원전에서 나온 오염수의 해양 방류 문제로 논란이 뜨겁다. 도쿄전력은 사실상 오염수 방류 초읽기에 들어갔다.

다른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 정부는 한사코 일본의 주장을 대변하느라 무척이나 바쁘다. 원자폭탄을 맞고 이 땅에서 물러간 일본이 이제는 핵 오염수로 우리의 바다와 밥상을 침범하려고 한다. 히로시마에서 후쿠시마까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안전한 ‘핵’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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