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700회 대기록
헌혈왕 이순만(65)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흔히 남보다 가족이나 집안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말로 쓰이지만, 피를 나누는 헌혈을 통해 남에게 생명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강원도 헌혈왕 이순만 씨(65)는 지난 3월 강원도 최초로 700회의 헌혈로 새로운 기록을 쓰게 되었다. 40년 넘게 꾸준히 헌혈해온 결과이다. 그 사이 710회가 되었다. 주말인 토요일에 헌혈의 집 춘천 명동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여기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헌혈 700번이라면 언제 시작해 얼마 동안 한 것인가요? 첫 헌혈은 언제이고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우리 나이 정도 된 사람들은 다들 경험했겠지만, 학교에서 단체로 헌혈을 했잖아요. 그때 처음 헌혈했을 겁니다. 그 후로 갑자기 피가 부족하다고 연락이 오면 내가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는 O형이니까 병원에 가서 몇 번 더 했죠.

그런데 본격적으로 헌혈하게 된 것은 도계에서 탄광에 근무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 당시 탄광에서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는데, 급할 때는 밤중에 깨 새벽에 헌혈하러 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혈한 환자가 수술을 잘 받았는지 병문안하게 되었는데, 환자의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생명의 은인이라며 예상치 못한 감사 인사를 했어요. 그때 이 일이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헌혈을 이렇게 자주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헌혈을 정기적으로 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중동 건설 경기 붐을 타고 이라크에 6년 정도 나가 있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헌혈 문화가 없어요. 한국사람이 교통사고가 나서 딱 한 번 헌혈했지요. 아마 국내에서 6년 동안 꾸준히 헌혈했으면 지금보다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코로나에 걸려 유예기간 동안 헌혈할 수 없었는데 그게 아쉬울 정도라면 중독이겠죠. 제가 헌혈 때문에 해외 가족 여행을 못 갑니다. 어떤 나라들을 여행하면 여행 기간은 물론이고 돌아와서도 풍토병 전염 등을 검사하느라 오랫동안 헌혈을 못 하죠. 그래서 경비는 다 내고도 가족 해외여행을 못 갑니다. 이 정도면 중독이죠. 제 주변에 해외여행을 좋아하던 사람은 처음에는 나하고 비슷하던 헌혈 횟수가 차이가 나게 되었지요. 

그래도 헌혈이 좋으니까 하는 거겠죠? 헌혈을 위해 따로 건강 관리도 하시나요? 

피가 부족한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고, 제 몸의 이상 여부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헌혈입니다. 자동차를 오래 끌다 보면 엔진이 상하고, 엔진 교체하면 새 차가 되잖아요. 그냥 저도 묵은 피는 빼고 그러면 피가 금방 생기니까 하는 겁니다. 헌혈하게 되면 피검사를 하게 되니까 혈압·헤모글로빈 수치 등을 알려주기 때문에 본인의 건강 체크도 할 수 있습니다. 헌혈하고 나면 피 성분에 대해서, 이상 여부에 대해서도 통보해줍니다. 그래서 건강하지 못하면 헌혈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헌혈을 하고 싶으면 건강 관리를 해야죠. 술·담배는 원래 안 하는데 계속 안 합니다. 기왕이면 깨끗한 피를 드려야 하니까. 특별히 따로 운동하는 건 없지만 일상에서 틈나는 대로 걷기운동, 근력 운동 정도로 몸 관리는 하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일하시고 주말에도 이렇게 나와서 봉사하시는데, 헌혈하기 전하고 헌혈하고 나서 세상 보는 눈 혹은 일상의 삶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뭐 특별하게 달라진 건 없어요. 나 혼자만 잘먹고 잘살기보다는 기왕이면 도와가며 살아야죠. 원래 이렇게 많은 횟수의 헌혈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적십자에서 헌혈하고 나서 적십자봉사원이 되었죠. 자연스레 때가 되면 헌혈하고 그러다 보니 여기서 접수도 돕고 안내도 하고 그럽니다. 그 외에도 장마철에는 수해복구도 다니고, 농촌일 손이 바쁘면 돕기도 하고, 강가에 쓰레기 넘치면 환경보호도 하고 다니고 그럽니다. 얼마 전부터는 연탄은행 이사직도 맡아서 하는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특별할 거 없는 일상입니다. 

이 정도면 헌혈 전도사라 할 수도 있습니다만, 주말에도 나와 계시면 가족들은 못마땅해하시지 않나요. 이 기회에 헌혈을 꺼리는 문화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맨 처음에는 형제자매들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10회 20회 이어지다가 100회 때 신문과 방송에 나가면서 어머니가 알게 되었죠. 그때까지는 비밀로 했었는데, 옆집 사람들도 와서 얘기하고 그러니까 알게 되어 처음에는 반대했죠. 그런데 한번은 옆집 노인이 병원에서 수혈을 받으니 내 생각이 나더라고 하기에 그분께 지정 헌혈을 하기도 했죠. 지금은 다들 잘했다고들 그러죠. 요새는 그래도 헌혈을 꺼리던 문화가 많이 달라졌어요. 20~30년 전에 명동에 나가 캠페인을 하면 사람들이 막 피해 다니고 그랬어요. 헌혈하면 해롭다는 편견도 있고, 주사 맞을 때 통증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며칠 분이라도 수혈에 여유가 있지만, 여전히 헌혈은 중요해요. 특히 단체헌혈이 줄어 개인들의 자발적인 헌혈이 중요해졌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헌혈을 꺼리는 문화가 개선돼야 할 겁니다.

너무 헌혈 얘기만 했네요. 하시는 일을 여쭈어도 될까요. 헌혈 700회 기록도 대단한데, 한참 전 보도이니 좀 더 늘었을 거 같습니다. 

네. 지금 (주)산E&C건축사무소에서 감리 일을 맡아보고 있습니다. 그 일로 속초에 가 있는 거고요. 일이 있으면 외지에 몇 달씩 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한이 없었지만, 지금은 성분헌혈을 합니다. 혈액을 채혈한 혈구 성분과 혈장 성분으로 분리하여 필요한 부분만을 채혈하고 나머지는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인데, 2주마다 한 번씩 할 수 있었어요. 아픈 데 없이 건강하면 1년에 25번 정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700회 정도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게 3월인데 그 후에도 계속해 지금은 710회 정도 됩니다. 기록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하는 거죠. 현행법상 만 69세가 되면 정기적인 헌혈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이후로도 지정 헌혈은 가능하죠. 건강을 잘 유지해 800회까지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헌혈을 이렇게 많이 하게 된 이유를 묻는 말에 특별한 사정을 얘기할 줄 알았더니 일종의 중독이라고 답하는 걸 보고 놀랐다. 봉사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건강도 지키고 남의 생명도 살리는 이러한 중독은 널리 물들어도 되는 아름다운 중독이 아닐까.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는 사람, 그래서 남들에게는 특별하게 여겨지는 봉사가 일상인 선한 영향력의 소유자다.

김진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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