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진 강원이주여성상담소 상담사

휴일을 맞아 김유정문학촌을 찾았다.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들판 사이로 비가 내렸다. 미처 긴 옷을 준비하지 못해 ‘반팔’ 티셔츠 아래로 소름이 돋았다. 한 계절이 끝나고 있다는 신호다. 향수병이 고향의 건기처럼 마음 깊이 들어올 때가 있다. 바로 이 무렵이다.

필리핀은 덥고 습해서 늘 그날이 그날 같지만 그래도 이즈음의 춘천은 필리핀의 9월 건기와 닮았다. 필리핀에서는 9월부터 11월까지의 건기 동안 바닷물의 수온도 함께 내려간다. 그럴 때 남편이 함께 가자고 유혹하는 곳이 김유정역과 그 주변이다. 김유정역의 레일바이크는 내가 ‘애정’하는 장소다. 특히 향수병이 손끝에서 가슴까지 유릿가루처럼 번져올 즈음, 그럴 때면 레일바이크를 타러 간다. 레일바이크가 어느 동굴 캄캄한 곳을 통과할 때 페달을 힘껏 밟으며 “야호 야”라고 외친다. 떠나온 곳을 잊지 않겠다며, 다정했던 조국과 그들을 호명하는 나의 시그널이다.

일제강점기 실레마을에서 만난 젊은 지식인 소설가 김유정은 애틋하다. 그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이곳 실레마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야학을 열었다고 했다.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까지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는 것을 보면 그가 일제강점기 조선의 동포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것 같았다.

춘천의 실레마을에 김유정이 있다면 필리핀에는 서른다섯에 처형당한 ‘호세 리잘’이 있다. 리잘은 16세기 이후 수백 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통치 속에 착취와 차별의 구조에 놓여있던 필리핀 국민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안과의사였던 그는 필리핀의 독립을 위해 글을 썼으며 그 의지를 드러낸 소설이 《나를 만지지 마라》였다. 스페인 강점기, 리살이 그토록 드러내고자 했던 민족의 아픔과 저항, 그리고 굴욕을 춘천의 실레마을 김유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리살이 1887년 발표한 소설 《나에게 손대지 마라》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그의 강인한 저항의식을 열렬히 흠모했다. 리잘이 잡혀서 처형되기 전날 쓴 ‘마지막 인사’는 나의 애송시이기도 하다. 그는 1896년 서른다섯의 나이로 스페인군에 처형당하면서 필리핀 독립을 앞당겼고 나는 그가 지켜낸 조국을 떠나 대한민국 춘천에서 서른일곱 가을을 보내고 있다. 호세 리잘이 처형되기 전날 쓴 시 ‘마지막 인사’는 다정한 조국을 기억하고자 하는 내 방편이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호세 리잘.

 

 

 

 

 

 

잘 있거라, 서러움 남아있는

내 조국이여

사랑하는 여인이여

어릴 적 친구들이여

감사하노라. 잘 있거라

내게 다정했던 나그네여

즐거움 함께했던 친구들이여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아 죽음은 곧 안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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