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서 내려온 사람', 김재현

같은 동네에 사는 김재현 선생님과 《빨치산의 딸》을 읽고 색다른 인터뷰를 했다. 이 책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가 33년 전인 1990년 쓴 소설로, 국가보안법에 반한다며 판매금지를 당했던 책이다.

책은 언제부터 좋아하셨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삼국지》 10권 세트를 사주셨어요. 그때 책을 한 세트 사준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때였죠. 그때부터 독서에 불이 붙었어요. 도서관에 가면 뷔페식당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쪽은 이탈리아 음식, 저쪽은 미국 음식이나 독일 음식, 그리고 한국 책을 읽으면 한식. 그 자체로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내 인생에서 책은 빼놓을 수 없어요.

《빨치산의 딸》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빨치산의 딸》은 민중사적인 면에서 해방 후의 시공간을 생생하게 그린 책이에요. 정사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과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실화를 그렸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장편 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정지아 작가의 삶의 고백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아무래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종북몰이’가 심했을 것 같은데, 직접 경험하신 적이 있으실까요? 

물론이죠. 우리 아버지가 이북 출신이라 ‘빨갱이’로 몰린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부산에 학교를 세우고 재단 이사장 겸 학교 교장이었는데, 그때 부산에 학교가 많이 생겨 경쟁이 치열했어요. 한번은 아버지가 이승만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듣고 경쟁 관계에 있는 학교에서 고발했어요. “저 양반이 이북 출신인데, 현 정부를 비난하고 이북을 찬양하는 빨갱이다”라고요. 그때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일주일 동안 경찰서에 억류되는 등 아주 혼이 났죠.

《빨치산의 딸》에 사상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이상적인 정치는 무엇일까요?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는 좋은 거죠. 좋은 약을 한곳에 모아둔 거 같은. 그중에 또 알짜만 뽑아놓은 것이 공산주의고요. 기본적으로 인류의 희망과 기대, 꿈을 모아놓은 것이거든요. 지금 자본주의는 돈 많은 사람끼리 잘사는 건데,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세금 더 내라는 이야기니까. 현실에서는 사회주의가 기능하기가 쉽지 않아요. 가진 사람들은 자기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할 테니까 사회적 대립과 갈등만 깊어지겠죠.

통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남쪽의 극우세력은 통일하자는 게 아니에요. 북쪽을 흡수하자는 거죠. 북쪽을 자본주의화하는 게 통일이라는 건데, 기본적으로 그건 싸우자는 얘기죠. 싸우지 않기 위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해요. 휴전에서 정전으로 가는 거죠. 전쟁을 끝내자. 그다음에 서로 무장을 해제하고 군대를 줄이면 숨통이 트이겠죠. 그다음에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며 공존하는 거고.

《빨치산의 딸》도 자서전인데, 자서전을 쓴다면 어떤 제목을 붙이고 싶을지요?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한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네요.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 정도면 좋겠네요. 월남 가족이 2~3대까지 합하면 한 20%가 넘는다고 해요. 나와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한 사람의 삶에 시대의 양이 얼마나 들어있는지가 그 삶의 정직성을 판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다. 해방과 전쟁을 겪은 세대인 김재현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주인공의 경험을 공유한 덕분에 ‘빨갱이’나 ‘통일’ 등 다소 부담스러운 주제들을 쉽게 꺼낼 수 있었다. 세대를 넘어 책에 대한 애정 하나로 만난 ‘북쪽에서 온 사람’ 김재현 선생님의 정직한 삶과 그 시선을 계속 따라가 보고 싶다.

최유빈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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