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 이사장

지난 21일 국회에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함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 처리됐다. 체포동의안 상정에 앞서 박광온 원내대표는 “부결은 방탄의 길이고, 가결은 분열의 길”이라며 “민주당을 궁지로 밀어 넣으려는 정치적 올가미”라고 밝혔다. 누구는 검찰의 ‘꽃놀이패’라고 했다. 혐의의 경중을 떠나 장기 단식 중인 거대 야당의 대표를 잡겠다며 굳이 회기에 체포동의서를 보낸 검찰의 꼼수는 졸렬함을 넘어 사악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의아한 건 이런 검찰의 뻔한 수를 왜 눈 뜨고 당했을까 하는 점이다. ‘방탄’이라는 조롱과 ‘분열’의 빌미를 피할 고육지계苦肉之計는 체포동의안에 당당히 맞서는 것이었다. 설령 구속을 피할 수 없더라도 그것만이 불체포특권 폐지 약속을 지키고 거꾸로 사악한 검찰 권력을 궁지에 몰 수 있는 ‘신의 한 수’였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정반대를 선택했다. 장기간 단식으로 여론이 부결에 호의적일 정도로 바뀌었다고 낙관했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큰 오판이었다.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 연합군은 조조의 군대에 맞서기에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연합군 사령관인 오나라 장수 주유는 노장 황개를 미끼로 고육지계를 썼다. 황개는 주유에게 심한 매질을 당하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의심 많은 조조는 첩자를 통해 내막을 조사했지만, 워낙 탄탄한 각본과 연출에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적벽대전이 시작되고 제갈량의 예측대로 동남풍이 불자 황개는 조조의 함선에 불을 붙였다. 방통의 연환지계連環之計로 모든 함선을 쇠사슬로 단단히 연결한 조조의 함대는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둔 유비는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형주와 익주에 둥지를 틀었고, 손권은 동남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로써 위·촉·오 삼국정립三國鼎立의 형세가 완성됐다.

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계책인 고육지계는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열한 번째인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진다’는 뜻의 이대도강李代挑僵과 같은 계책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버리는 길’ 대신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결과는 ‘망하는 길’이었다. 부결됐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탄’이라는 질타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강성 지지자들은 똑같이 ‘배신자’ 색출에 분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리 해임건의안은 빛이 바랬을 것이고, 해병대 수사 개입, 양평고속도로 게이트, 일본 핵오염수 방류 지지, 홍범도 흉상 철거 등 모든 중요한 이슈가 증발됐을 것이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지금, 언론에서 일제히 ‘분당’을 언급할 정도로 민주당은 자중지란自中之亂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검찰의 꼼수는 대어를 낚은 심오한 계책이 돼버렸다. 혼수모어混水摸魚. 물을 흐리게 한 후 물고기를 잡는다. 적을 혼란에 빠뜨린 뒤에 공격한다는 것으로 삼십육계 중 스무 번째 계책이다. 민주당의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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