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옥 협동조합 퍼니타운 이사장
박인옥 협동조합 퍼니타운 이사장

지난 8월, 잼버리 파행 사태와 관련한 현안질의를 위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열렸다. 하지만 당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개의 시간이 되어도 상임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다리던 여가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대기 중이라는 김 장관을 찾아 나섰고, 마침 복도에서 여가부 대변인을 발견했다. 김 장관이 어디 있냐는 추궁에 여가부 대변인은 급히 화장실로 숨어버렸고, 여당 의원들은 국회 본청과 대기실 등을 다녔지만 끝내 김현숙 장관을 찾지 못했다. 난데없는 장관의 잠수로 상임위가 파행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난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야말로 ‘행’방불명 됐다. 김 후보자는 낚시성 기사와 여성혐오·성상품화 기사를 쏟아내 온 황색언론의 대표주자 위키트리의 창업주로 ‘주식파킹’과 ‘배임’ 의혹에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 문제까지 불거졌다. 이에 대해 “청문회에서 숨김없이 다 밝히겠다” 큰소리치던 그가 자료제출을 거부하더니 결국엔 청문회장을 박차고 나가 버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 장관의 시작과 끝이 모두 ‘줄행랑’이 돼버렸다.

‘줄행랑’은 ‘행랑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말한다. ‘행랑(行廊)’은 ‘대문간에 줄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문간채’를 가리키는데, 종들이 주로 거처했다. 권력이 강한 양반집일수록 행랑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권력이 엎치락뒤치락하던 난세에는 종들이 집안 상황이 안 좋으면 행랑을 내달려 도망쳤다고 해서 ‘줄행랑을 치다’라는 말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줄행랑’이 현대에 와서 ‘빤스런’이라는 속어로 대체된 적이 있다. 자기만 살겠다고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채 도망치는 모습을 조롱하는 신조어다. 주로 본인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자나 권력자를 비난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빤스런’ 인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겠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혼자 한강철교를 건너 도망치면서 라디오 방송으로는 국민을 기만했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속옷 바람으로 탈출하던 선장의 모습도 결코 잊을 수 없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던 한덕수 국무총리도 ‘빤스런’까지는 아니지만 도착한 지 약 30초 만에 줄행랑을 쳤다.

난세 속에서 영웅이 되려면 인내와 용기, 리더십과 이타심은 물론이거니와 두려움 없는 태도로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비판과 거센 항의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안전과 삶을 책임지겠다는 이들이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모습이라니! 버선발로 허둥지둥 줄행랑치는 양반, 아니 영락없이 처음부터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종의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의 고위관료들과 나머지 두 명의 장관 후보자는 어떤 식의 ‘회피’와 ‘도망’을 보여줄지 기대감이 크다. 국민의 화만 돋우는 현 정부의 인사 감행, 김행 후보자의 말대로 윤 정부의 “드라마틱한 엑시트”가 절실하다.

*10월부터 '망대단상' 코너는 박인옥·이진천·류재량·홍주리 네 분이 번갈아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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