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딤 아쿨렌코 중앙대 RCCZ연구단 연구교수.
바딤 아쿨렌코 중앙대 RCCZ연구단 연구교수.

세상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 새로운 세대는 부모의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습관이나 풍습은 늘 변한다. 올해는 내가 처음 유학생으로 춘천에 와서 추석을 맞은 지 17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한림대 5학년 학생이었던 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습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서 관련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추석의 의미와 풍습, 특히 민족의 대이동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유학을 온 내 친구는 추석 때 일어난 일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추석을 약 일주일 앞두고 교수나 친구들이 추석 연휴에 대해 알려주었다. 우리는 기차나 버스 승차권을 구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춘천 시내와 주변을 돌아다니며 충분히 즐기기로 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클럽에 가서 술 마시며 춤을 추고, 맛있는 먹거리를 사서 대학 공원에 앉아 즐길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추석 2일 전, 캠퍼스는 서서히 비어가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이나 교수들뿐만 아니라 기숙사 식당 아주머니도 학교를 떠나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캠퍼스 근처의 한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재미있는 걸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낼 준비를 했는데, 캠퍼스 밖 식당이 모두 문을 닫은 걸 알았다. 이렇게 아침 식사부터 완전히 잘못된 우리의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캠퍼스 주변 식당과 슈퍼는 모두 문을 닫았다! 강원대 후문 먹자골목도 휴업이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당연히 휴관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영화처럼 텅 빈 춘천의 거리를 걸으며 문을 연 식당과 슈퍼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결국엔 편의점에서 산 새우깡과 라면만 잔칫상에 올렸다. 전통적으로 가족 명절인 추석날을 우리는 매우 슬프고 외롭게 보냈다. 4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며 유학의 열망에 가득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추석 다음 날 점심시간쯤 음식점들이 일제히 문을 열기 시작했다. 고향에 갔던 친구들도 기숙사에 돌아왔다. 그들 중에는 우리가 제사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송편이나 육전을 가져온 친구도 있었다. 특히 우리 기숙사에 사는 러시아학과 졸업생이 우리에게 준 약밥 맛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우리는 추석의 정신에 빠져들었고, 다시 한번 마음 놓고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역사를 공부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겪었던 추석에 대한 경험은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그래서 한국에서 추석을 맞이할 때면 공황장애를 느끼곤 한다. 한림대 러시아어과 교수로 다시 춘천에 왔던 2015년 추석 때는 이틀 전에 우리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을 식료품을 사 두었는데, 추석 연휴에도 모든 가게와 상점들이 문을 열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올해도 추석 전날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주변 상가를 돌며 영업시간을 알아봤더니 놀랍게도 영업시간을 조금 줄이기는 해도 아예 문을 닫는 가게는 거의 없었다.

나는 학생 때 배운 한국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조금은 슬프다. 한국 사람들이 추석을 보내기 위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방법만 현대적으로 변했을 뿐 아직 추석의 정신은 잊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는 가장 친한 한국인 친구 덕분에 처음으로 제사에 직접 참여했고, 가장 오랜 한국 친구 가족을 만나러 경상북도에도 다녀왔다. 올해 추석은 다행스럽게도 내 가족과 친한 친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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