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일과 포도 농사에 진심이었던 선배 같은 후배. 암 투병 끝에 결국 떠났다는 소식에 경상도로 달려갔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많은 이들이 모였고, 늙은 농부들은 젊은 사람 앞세웠다며 상심하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본 얼굴들이 반갑고 근황이 궁금했지만, 인사를 주고받는 말 밖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배는 고파서 육개장을 퍼먹고 있었는데.

“요즘 춘천 공기가 별로라며?” 

경상도에서 민주당으로 고군분투 정치하고 있는 선배가 소주잔을 따라 채워 건넨 말. 공기? 뜬금없어 어리둥절하다가 겨우 알아챘다. 도지사나 시장이 바뀌고 춘천에 변화가 있지 않냐는 뜻이었다. 급히 다량 섭취한 알코올 덕분에 운전하는 형님 졸리지 말라고 조수석에서 내내 수다를 떨었다. 춘천휴게소 지나 내리막길에서 차창을 활짝 내리니 익숙한 춘천 밤공기가 밀려왔다. 그리고 아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나 참. 춘천 공기가 뭐가 안 좋다는 건지.”

“정치 잘할 친구잖아? 뭔가 답답했나 보네.”

“정치하는 양반들 착각이 심해요. 춘천 시민들이 고작 시장 때문에 나쁜 공기 마시고 있다는 겁니까? 그러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 썩은 공기 마시고 있나요? 한낱 대통령 때문에?”

“정치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 아닌가?” 

“정치인을 과대평가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더 가볍게 보고 더 하찮게 여겨야 한다 이겁니다. 안 그러니 자신들이 공기를 바꿀 수 있는 존재쯤 된다고 착각하게 되는 거죠.”

“아직도 술이 안 깨나?”

약간 억지를 부렸던 건 떠난 후배 때문이었던 것 같다. 20대에 머슴 살며 농사를 배울 때 처음 만났고, 결혼과 육아와 포도농사의 흥망도 멀리서 지켜봤다. 젊은 이장으로 조그만 마을을 오순도순 바꿔 가는 모습도 봤다.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진 그 일을, 후배는 작게 아기자기하게 열심히 풀어갔다. 작은 시골 마을의 공기를 생기있게 바꿔 나갈 수 있었던 이유? 그 마을 어르신들처럼 평생 농사짓다 늙어 죽고 싶다고 했던 그 마음 때문이었다. 결국 그 별것 아닌 꿈조차 이루지 못했지만.

정치인은 ‘고작’이고 ‘한낱’이고 ‘겨우’이며 ‘잠시 잠깐’이다. 그런데도 참 시끄럽고 요란하다. 정치인이 공기를 바꾼다? 작은 마을에 평생 살면서 애써도 마을 공기를 바꿀 수 있을까 말까다. 시원하고 상쾌한 가을 공기가 좋다. 춘천의 공기를 누리든 바꾸든 시민들이 판단하고 시민들이 실행하는 것이 정상 정치다. 정치인이 설치면 비정상이다. 현수막에서 웃고 있는 그들의 정치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의 권리이자 권력 행사가 정치다. 이런, 아직도 술이 안 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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