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유학생 보보쩌우의 춘천살이 ①

나는 미얀마의 작은 도시 타칠릭에서 왔다. 어릴 때부터 계속 타칠릭에서 살았다. 집안의 막내로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점수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대학교를 선택했다. 대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고민 끝에 공대와 치과대·약학대, 그리고 만달레이 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선택했다. 각 대학교 합격자 결과가 나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어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다. 어떤 부분을 잘못 제출했을까 싶어 복사해 둔 입학신청서를 찾아봤더니 만달레이 외국어대 독일어과에 지원한 게 아니라 특정 학과를 정하지 않고 그냥 지원했던 것이었다. 모든 학과의 입학 결과를 다 확인한 결과 한국어과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와 맺은 첫 인연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과 그리운 고향을 떠나 만달레이 외국어대 한국어과에서 한국으로 가는 첫걸음을 시작했다. 한국어과 공부를 시작하면서 송일국이 출연한 한국 드라마 ‘주몽’과 PSY밖에 몰랐던 나는 한국어를 배우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4년 내내 옆에서 도와주신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한국의 문화와 예의, 그리고 역사를 배울 수 있었고 좋은 성적으로 한국어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기 전에도 미얀마에 들어와 있는 한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한국에 대해 배우면서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찾고 있었다. 학부를 마치고 예비석사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얼마나 더 가까워지게 될지 알지 못했다. 2020년 여름이었다. 친구가 한국 유학 프로그램에 석사과정으로 신청하려고 한다면서 나에게도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당연히 관심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떤 전공으로 신청해야 할까?’ 스스로 고민하며 판단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대학에서 축구나 투포환 같은 운동 대회에 많이 나갔기에 미얀마의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 스포츠를 전공하기로 했다.

2020년 코로나가 심할 때 나는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던 교수님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장학금 합격 결과 발표가 있던 날, 막상 합격 결과를 발표한다고 하니 너무 긴장됐다.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로또를 맞은 것처럼 너무 행복했다. 유학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고향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그해 8월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 나는 한국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비행기를 6시간이나 타고 혼자 유학을 떠난다는 게 나로서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 내리는 그 시간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는 내리는데 한국말은 서툴고 수많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또는 출입국에서 혼자 말하는 게 무서웠지만, 서류를 제출하고 홀로 물어가면서 춘천까지 온 걸 생각하면 아직도 자랑스럽다. 빗속에서 춘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한국,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춘천과 만남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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