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리 춘천은둔형외톨이자조모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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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2019년 당시 내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가족을 잃었고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들었던 생각은 ‘살고 싶다’ 였다. 그 이후 내 삶이 왜 이리 고달프고 힘든지 그 원인을 차근차근 하나씩 되짚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10여 년 전 직장에서 성폭력을 겪은 것이 떠올랐고 10년이 지난 뒤에야 내가 피해자라는 것을 인지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혹시라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나 하는 물음표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다녔다.

그러던 중 ‘성폭력상담소’를 알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니 우선 피해 사실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상담소에서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피해자로 인정하고 회복을 위해 내게 여성주의에 기반한 상담을 8주 동안 제공했다. 마음속 상처를 완벽하게 회복했다고는 못하지만, 그때 들었던 위로와 공감의 말들로 지금까지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피해자지원 관련 예산 142억이 줄어든다고 한다. 예산 지원이 사라진 항목 중에는 피해자 치료회복 프로그램과 의료지원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내가 2019년이 아니라 2024년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인지했다면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사업 효율화’를 명목으로 예산을 감축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피해자를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직장 내 성희롱과 성차별을 경험했거나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노동부의 고용평등상담실 예산 또한 전액 삭감되었다. 불평등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문을 두드리는 고용평등상담실은 2000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직장 내 성희롱 지원 경험과 역량을 쌓아왔다. 내년부터 이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고용노동부 8개 지청에 단 한 명뿐이라고 한다. 형식적인 제도만 남겨두고 실제 상담을 받는 것은 어렵게 만든 것이다.

춘천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도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 곧 운영이 중단된다고 한다. 지난해 상담 건수만 2천338건인데, 앞으로 가정폭력·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여성가족부도, 강원도도, 춘천시도,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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