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화 강원이주여성상담소 중국통역상담사
손홍화 강원이주여성상담소 중국통역상담사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등록 외국인 남성을 지원한 일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2년 정도 대학에 다니다 내전 중이던 고국 콩고로 돌아갔다. 고향 콩고에서 당시 한국 교환학생으로 만났던 아내와 결혼했고 지금은 아내와 한국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한국에 들어올 때 3개월 단기 비자로 들어와 3년째 미등록 신분으로 체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콩고에 있을 때 컴퓨터 프로그래머 전공을 살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았다. 주로 토마토 농장과 깻잎 농장을 전전하면서 한국에 온 지 3년째 되던 해에 콩고에서 진 빚을 어느 정도 갚게 되었다. 1년 정도만 더 일하고 콩고로 돌아가 새로운 일을 준비하려던 참에 아내가 임신했고 아들이 태어났다. 의료보험이 없어 상당 금액의 출산비를 감당해야 했지만, 젖 냄새로 가득한 세 평 반 원룸은 들어서기만 해도 환했다, 그런데 산후조리 중이던 아내가 갑자기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3천여만 원이 넘는 병원비와 월세, 공과금이 밀리고 가스가 끊기는 한계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따로 맡길 곳이 없는 갓 한 달 된 아기를 업고 상담소를 방문했다. 테이블에 아기를 누이고 분유를 먹이는 남성의 손 마디마디가 굳은살로 딱딱했다. 그는 이렇게 빚진 상태로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혹시 병원비만이라도 지원받을 공공의 시스템이 없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여름이 훨씬 지났는데도 남성의 얼굴에서는 연신 땀이 흘렀다.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미등록 외국인 가족을 지원할 공식적인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미등록자를 지원할 국가적 시스템은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수녀님들이 활동하는 NGO 단체와 연계되어 병원비와 아기 생필품 등을 얼마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마침 남성의 아내도 수술 경과가 좋아 퇴원할 수 있었고 당분간 NGO 단체에서 지원하는 의료보험제도를 활용하여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가족과 함께 얼마나 더 위험한 미등록 신분으로 한국에 머무를 것인지는 묻지 못했다.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미등록 외국인은 이미 약 41만 명이나 된다. 그들은 몸이 아파도 의료비가 무서워서 병원에 가지 못한다. 저임금 상태에 내몰리고 임금을 떼이기도 하지만 대항하기 어렵고 여성은 성추행 등 범죄를 당해도 쉽게 신고하기 어렵다. 미등록이라는 신분이 알려지면 언제든 강제송환이 된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젊은 이주노동자의 사례는 1년에 서너 번 뉴스를 통해 보게 된다.

올해 초 영국 정부는 ‘불법이민방지법안’을 발표했다. 불법적 경로로 영국에 들어온 이민자는 가능한 한 빨리 추방하겠다는 법안이다. 이 법안에 대해 “취약한 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잔인한 정책”이라고 말했던 리네커는 출연 중인 방송에서 물러났다.

취약한 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잔인한 정책은 지금 한국에서도 현재진행 중이다.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렵고 임금을 떼여도 대항하기 어려운 차별적 신분, 같은 땅에 살면서도 다른 권리 차별을 강요하는 이상한 사회구조. 취약한 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잔인한 정책이라는 리네커의 말이 하루종일 맴도는 며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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