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형 동검보다 이른 시기 유물···요동지역 관계 주요 자료
문화재청 전문가 검토 결과에 따라 유적 보존방식 결정될 듯

상중도 고산(孤山)에서 발굴된 ‘검파두식’. 사진=(재)강원고고문화연구원
상중도 고산(孤山)에서 발굴된 ‘검파두식’. 사진=(재)강원고고문화연구원

춘천시가 조선시대 대표 학자들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된 상중도 고산(孤山)을 관광 자원화하는 ‘조선 문학 유산 복원사업’ 부지에서 선사시대의 유구가 다수 발견됐다. 시는 문화재청의 판단에 따라 유구가 발견된 부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정할 계획이다.

(재)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지난 7개월 동안 상중도 고산 아래 ‘조선 문학 유산 복원사업’ 부지 중 8천55㎡ 규모의 부지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 92동과 통일신라 시대 유구 7기, 고려 시대 계단지 1기 등 총 229기의 유구들을 발굴했다. 석창·석촉·석부류·석도·방추차 등의 석기류와 돌대문·이중구연·공열문·구순각목문·무문토기 등의 토기류,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사이에 사용됐던 타날문토기·단경호·기와류 등이다.

이 가운데 돌로 만든 검파두식(劍把頭飾)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비파형 동검이나 세형동검의 칼자루 끝에 장착한 장식으로서 동검의 찌르는 힘을 키우는 역할을 강조해서 가중기(加重器)라고도 하며, 장식성을 강조해서 검파두식이라고도 한다.

홍주희 (재)강원고고문화연구원 조사연구실장에게서 검파두식의 의미를 들었다.

상중도 고산의 조선문학유산 복원사업부지내 유적조사 현장 일부.
상중도 고산의 조선문학유산 복원사업부지내 유적조사 현장 일부.

이번에 발굴된 검파두식이 특별한 이유는?

이른 시기의 유물이다. 청동기 시대는 비파형 동검이 유명하다. 표지 유물인데 비파형 동검 단계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 동검이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단계의 검파두식이다. 

그 시기의 돌로 만든 검파두식이 발견된 건 처음인가? 

그렇다. 경기도 광주 역동과 김해에서 같은 시기에 청동제로 만든 비슷한 형태의 검파두식이 나온 적은 있다. 그런데 그것을 현지화해서 석재로 만든 건 이번에 처음 발굴됐다. 비파형 동검 전 단계부터 동검이 사용된 요동 지역과의 관계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관계라고 하면 사람의 이주를 말하나?

1980~1990년대만 해도 이런 유물이 나오면 보통 사람의 이주로 풀이했지만, 요즘에는 그보다는 지역과의 교역 등 포괄적으로 연구한다.

이른 시기에 돌로 만들어졌고 요동까지 포함해서도 드문 유물이다.

그렇다. 다만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비파형 동검 이전 단계에서는 청동기 자체를 제작하지 않았다. 그 시기에 그것을 모방해서 석재로 만든 희귀한 유물이다. 

검은 발굴되지 않았다. 

청동이라는 재질 자체가 희소해서 주거지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 신분을 상징하는 ‘위신재’로 무덤에서 출토된다. 지난번 하중도 발굴 당시 무덤에서 동검이 한 점 나온 적 있다. 주거지에서 청동기가 나오는 일은 없다.

레고랜드 이전 하중도 발굴과 비교하자면? 

하중도 같은 경우에는 청동기 시대 중에서도 아주 이른 시기와 후기 유적이 주로 나왔고 이번 상중도 발굴에서는 청동기 조기·전기·중기·후기 각 시기에 걸친 주거지가 나왔다는 점에서 구별이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어느 유적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두 소중하다. 

유적지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

문화재청에 전문가 검토회의를 요청한 상황이다. 학술자문회의에서도 문화재청의 주관하에 전문가 검토회의를 통해서 유적의 사후처리를 논의하라는 의견이 있었다. 보존 방식은 기록보존·복토보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복토보존은 유구들을 이제 더 손상되지 않게 내부를 잘 충진하고 위에다가 일정한 두께로 복토한 후 이후에는 해당부지에 대해서 형질 변경이 없도록 유지한다. 전문가 검토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기다려보자.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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