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찬, 100년 전 각계 볼썽사나운 세태 비판

청오 차상찬.
청오 차상찬.

차상찬은 급변하는 사회의 일곱 분야, 곧 학계·문화계·종교계·출판계·여성계·상업계·잡동산이계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현상을 비판한다. 그가 예리하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지적한 100년 전 적나라한 서울 풍경은 과연 어땠을까?

1924년 3월 1일 발간된 《별건곤》 제2권 제3호(통권 제5호)에 실린 ‘요새 조선의 7분야의 7대 불가사의’라는 글을 통해 100년 전 식민지 조선 각 분야의 불가사의한 현상을 만나러 떠나는 시간여행은 자못 흥미로울 것이다. 먼저 ‘학계의 7대 불가사의’에 대해 살펴보자.

중학생들의 웃저고리가 짧은 것 : 그것이 유행이라고 대영제국으로부터 전보가 왔는지, 아니면 정말 양복감이 모자라서 흉하지만 그대로 입고 다니는지? 어쨌든 보기에 그다지 산뜻하지 않은 것을 그대로 걸치고 다닌다. 아니 이것은 누구에게 볼기짝 자랑을 하려는 것인가? 

여학생들의 신문사 견학 : 학생의 견학이 물론 필요는 하지만, 여학생의 신문사 견학이 꽤 많은 모양이다. 수업이 시작만 되면 “선생님! 신문기자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 신문사 구경 좀 시켜주세요?”라는 간청이 많아 그런지 걸핏하면 여학생들을 데리고 이 신문사 저 신문사로 향하기가 일쑤다. 상식상 견문을 넓히기 위함인지 사진 광고를 하기 위함인지 역시 의문?

문제의 반말 사용 : 지금 어떤 사람들은 아동 내지 하인들에게도 경어를 쓰자고 주창하고 혹은 실행도 하는데, 소학교는 물론 중등 고등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까지 일반 학생에게 반말을 씀은 어찌 된 까닭인지? 칼을 못 차는 대신 말로 위엄을 보이려 함인가? 반말이라야 수업이 잘 되고 또는 사제의 구분이 확실해지는가? 하여간 의문! 

外國서 오는 학박사 : 외국이란 대체 좋기도 한 모양인지 외국만 갔다 오면 대개 학사나 박사렸다. 일 년을 있었거나 이 년을 있었거나 학교에 다녔거나 말았거나 배 속에 똥이 있거나 지식이 있거나 거기만 갔다 오면 으레 무슨 박사니 학사니 하고 어깨를 으쓱거리니, 도대체 외국의 학박사는 어떻게 해서 되는 것인지? 불가사의! 

학문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의 세상 물정에 어둠 : 학교면 학교 교수면 교수, 그 중에도 맡은 대로 수학이면 수학뿐 지리역사면 지리역사뿐이지, 어느 겨를에 이것저것을? 이렇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러나 조선의 소위 학문을 연구한다는 자들은 너무도 세상과는 소통을 안 하는 듯, 그렇다면 그네들이 가르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지하의 일인가? 천상의 일인가? 아무리 하여도 알 수 없는 일! 

교수급의 생활난 : 조선 사람 중 월급 생활하는 이로는 아무래도 교수급의 수입이 제일 나을 것인데, 생활난의 부르짖음은 그분들의 입에서 먼저 나온다. 그러면 그의 주머니 속은 양복 사 입느라 줄어드는가? 술값으로 줄어드는가? 역시 불가사의!

종교학교의 잦은 분규 : 종교학교라면 물론 사랑과 평화를 표방할 것인데 실제로는 그와 딴판으로 분규의 알력이 다른 학교보다 많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 

100년 전이나 100년 후 지금이나 문제는 언제나 현재형이니 이 또한 불가사의!

《別乾坤》 창간호 표지.

권태완(차상찬읽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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