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요왕 마을활동가.
윤요왕 마을활동가.

아주 만족도가 높은 갭이어(Gap Year)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인생에 다시 없을 나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얽매이지 않는 일상에 무료하고 나태해지는 건 아닐까 살짝 불안함도 들지만, ‘괜찮다’ ‘좋구나’ 하는 마음을 알아차린다. 매일매일 무언가 깊이 없는 의무감처럼 분주히 움직이는 몸을 멈추니 내 마음이 느껴지고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마주하게 되는 설렘들이 있다.

적은 보수에도 4~5시간 걸리는 곳에 나를 기다리는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강의가 그렇고, 몸이 이끄는 대로 늘어지게 종일 뒹굴며 잠을 자도 괜찮은 것이 그렇고, 관계없던 젊은 대학생들과 우연히 문득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신선하다. 마음 없이 움직이던 몸을 멈추니 몸이 이끄는 대로 마주하는 세상이 마음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백수의 삶이 좋은 건 솔직하게 가고 싶지 않은 곳, 하고 싶지 않은 일, 만나고 싶지 않은 만남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 ‘자기 결정권에 대한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얽매이던 일상의 관계로부터의 자유가 자아와 세상을 보는 마음의 풍부함을 준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사람들, 그 생각들 끝에 요즘 자꾸 떠오르는 단어가 두 개 있는데 ‘품격과 매력’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만나고 쉬어가던 마을 우물가가 그랬다. 낯선 외국 순례자에게도 언제든 쉬어가고 목축여 갈 수 있던 곳에서 묘한 환대의 감사함을 느꼈다. 지역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의 매력’을 슬로건으로 지속 가능한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가던 일본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는 ‘너의 의자’를 마주하면서 행복감에 젖었다. 가보기 힘들었던 머나먼 남해와 울산·부산·공주·봉화·의성 등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마을의 고즈넉한 풍광들이 낯설지만, 마음으로 와닿았다.

그동안 세상과 지역·마을에서 벌이던 수많은 일과 행사, 관계들을 비추어보게 된다. 제멋대로 자유인으로 사는 게 나의 ‘삶의 결’인 걸 알면서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건 괜찮은 것이었을까? 몸도 멈추고 생각도 멈추어야 마음으로 마주하는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몇십 년 전으로 회귀한 것 같은 반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스마트폰 세상에 난무한다. 정치와 권력의 부당함을 목도하는 현실은 피로함을 넘어 혐오와 회피를 가져오는 듯하다. 

‘품격과 매력’, 도시든 마을이든 일이든 사람이든 품격과 매력이 처음이자 끝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를 주제로 포럼이 있었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마음을 이야기한다.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신념과 투쟁의 역사가 민주주의를 가져온 시대가 있었다. 숭고했고 진지했던 국민의 역사가 오늘을 있게 했다. 이제 일상의 민주주의를, 마음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야 한다. ‘품격과 매력’의 일상을 만드는, 그래서 자유로운 각자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즐겁고 행복한 상상의 오늘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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