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도립사범학교 교사로 신축됐다가 1930년 도립사범학교 폐지 후 교동 옛 춘천여고 터에 있던 춘천공립농업학교가 옮겨와 1939년까지 사용한 교사.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1928년 도립사범학교 교사로 신축됐다가 1930년 도립사범학교 폐지 후 교동 옛 춘천여고 터에 있던 춘천공립농업학교가 옮겨와 1939년까지 사용한 교사.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약사동 1번지. 지금은 주소가 ‘춘천로 141’이지만, 옛 주소로 ‘약사동 1번지’는 봉의초등학교다. 이 자리가 교육의 터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건 1928년 도립춘천사범학교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도립사범학교는 1920년대 이후 갑자기 늘어난 교원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1922년 4월 경성사범학교 설립과 함께 각도에 설치된 임시교원양성소가 그 효시다. 일제 교육 당국은 임시교원양성소를 수료하면 부훈도副訓導로 임명했다. 임시교원양성소는 1923년 춘천도립사범학교로 승격해 개교했다. 첫 교사 건물은 현 강원도청 자리에 있던 육군청사였는데, 1927년 11월 약사리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했다. 교육과정은 처음에는 2년제였다가 3회 생부터 3년제로 바뀌었다. 입학자격은 보통학교 고등과를 수료해야 주어졌다.

1927년 봄부터 약사동에 건축한 도립사범학교는 이듬해인 1928년 11월 21일 낙성식을 거행했다. 교사 건축에 들어간 비용은 6만6천780원. 이때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170여 명이었다. 그러나 도립사범학교는 조선총독부가 경성과 평양·대구에 총독부 직할 관립사범학교를 설립하면서 1931년 3월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폐교하고 말았다. 폐교 당시까지 배출된 졸업생은 200명 정도였는데, 이는 당시 도내 교원 수 450명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숫자였다(조선일보, 1931.03.14.).

도립춘천사범학교가 폐교되면서 교동 옛 춘천여고 자리에 있던 춘천농업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했다. 춘천농업학교는 1910년 3월 28일 실업학교 설치에 관한 고종의 칙령에 따라 4월 29일 요선동에 있던 사립측량학교를 임시 교사로 삼아 춘천공립실업학교로 개교했다. 일제에 강제 병합된 직후 춘천실업학교는 1911년 9월 현 교동인 내아리內衙里 향교로 이전해 명륜당을 교사로 사용하면서 도립춘천실업학교로 개칭했고, 같은 해 11월 1일 교명을 다시 춘천공립농업학교로 변경했다.

춘천농업학교는 1912년 12월 18일 옛 춘천여고 터에 건평 64평짜리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했다. 이후 1930년 약사리 현 봉의초에 있던 관립사범학교가 폐교하자 이곳에 건물 17동을 갖춘 340평의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했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1939년, 춘천농업학교는 한때 사우동으로 불린 신북면 마산리 현 강원생명과학고(소양고) 자리로 터전을 옮겨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춘천농업학교가 떠난 약사동 봉의초 터에는 1939년 4월 10일 심상과 2학급과 강습과 1학급의 관립 춘천사범학교가 문을 열었다. 춘천농업학교는 이보다 며칠 앞서 4월 7일 아직 완공되지 않은 마산리 신축 교사로 이전을 완료했다(조선일보, 1939.04.02.). 마산리 춘천농업학교 교사는 1년 후인 1940년 5월 25일에야 낙성식을 거행했다(매일신보, 1940.05.08.). 한편, 약사동 교사를 임시 교사로 사용한 춘천사범학교는 2년 뒤인 1941년 10월 13일 석사동에 신축한 본 교사가 준공과 함께 이전을 완료해 현재의 춘천교육대학교로 이어져 왔다(매일신보, 1941.10.16.).

그렇다면 1941년 춘천사범대학이 석사동으로 완전히 이전한 뒤 약사동 교사는 어떻게 됐을까. 그에 관한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다. 현 봉의초등학교 홈페이지와 위키백과에 따르면, 봉의초등학교는 1940년 4월 1일 춘천본정국민학교 부설 봉의간이학교 인가된 뒤 1944년 4월 1일 봉의국민학교로 인가된 것으로 소개돼 있다. 문제는 1940년 4월 1일에 봉의간이학교가 인가됐다는 내용은 틀렸다는 것. 봉의간이학교는 이보다 3년 앞선 1937년 4월 춘천공립보통학교 부설로 설치됐다. 1937년 농촌에만 설치했던 간이학교를 춘천·강릉·철원 3개 읍에 도시 간이학교를 설치해 학령 초과로 입학하지 못한 아동들을 2년제 학교에 수용했다. 이때 춘천에서는 춘천공립보통학교 부설로 봉의간이학교가 설치됐다.

당시 시내에는 춘천공립보통학교 하나밖에 없어 취학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당시 매일신보 기자는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아동이 400여 명이나 됐다. 그러나 봉의간이학교에 입학할 아이들은 10~15세의 남자아이 70명에 불과해 아직도 장래가 요원한 ‘홍로점설紅爐點雪’ 격의 시설”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매일신보, 1937.04.21.). 1937년 5월 2일 봉의간이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봉의간이교 개교식 연기.” 《매일신보》, 1937.04.27.
“봉의간이교 개교식 연기.” 《매일신보》, 1937.04.27.

《춘천초등학교 100년사》에 따르면, 춘천보통학교에 부설된 봉의간이학교는 남녀공학으로 1학급을 편성했다. 과정은 2년제였지만, 속성으로 보통학교 전 과정을 이수했다. 1937년 단양대 시절 춘천공립보통학교에 개설한 봉의간이학교는 1938년 가을 현 중앙로 춘천초 부지에 신축한 보통학교(본정공립심상소학교) 교사로 보통학교를 이전할 때 함께 옮겨 학업을 이어가 1939년 봄 제1회 졸업생 50명을 배출했다. 춘천보통학교 건물은 본동과 2동의 2층 교실로 건축됐는데, 봉의간이학교는 춘천보통학교 후동 북쪽 아래층 교실 한 칸과 별동으로 자리잡은 가사실에서 공부했다. 당시 재학생은 월 40전 정도의 수업료인 월사금을 납부했다. 봉의간이학교는 1943년 봄 제5회 졸업생까지 배출한 후 단절됐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1937년 춘천보통학교 내에 설치된 봉의간이학교는 1938년 중앙로로 함께 이전됐다가 1940년 약사동 현 교사에 있던 관립사범학교가 석사동 이전을 준비할 때 약사동으로 분립해 나온 것 아닐까. 그렇다면 1943년까지 간이학교로 존속하다가 1944년 봉의국민학교로 새롭게 출발한 걸로 추정할 수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봉의간이학교가 1940년에 인가됐다는 것은 명박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진은 일제강점기 약사동 춘천사범학교 건물 그림엽서로, 현 약사동 봉의초등학교 터에 있던 관립춘천사범학교 임시 교사. 춘천사범학교가 1941년 10월 석사동으로 이전한 뒤 봉의국민학교 교사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소실됐다. 앞의 사진과 건물 형태가 똑같다.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이 사진은 일제강점기 약사동 춘천사범학교 건물 그림엽서로, 현 약사동 봉의초등학교 터에 있던 관립춘천사범학교 임시 교사. 춘천사범학교가 1941년 10월 석사동으로 이전한 뒤 봉의국민학교 교사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소실됐다. 앞의 사진과 건물 형태가 똑같다.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전흥우(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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