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춘천고등여학교로 개교…2012년, 78년 만에 만천리로 이전

2022년 신정인 씨가 찍은 목백합나무.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2022년 신정인 씨가 찍은 목백합나무.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교정 한가운데 누가 심었는지도 알 수 없는 3백 년 넘은 목백합나무가 있고 학교 곳곳에 백합이 많아 향기가 진동했어요. 그 나무가 우리 동문들의 심리적 구심점입니다.”

《매일경제신문》 1991년 3월 25일에 소개된 춘천여고 관련 기사 중 춘천여고 13회 졸업생인 당시 재경동창회 회장 김태희 씨의 말이다. 춘천여고의 상징이라면 교정에 우람한 자태로 서 있던 목백합나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령이 300년이 넘었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목백합은 말 그대로 춘천여고 “동문들의 심리적 구심점”이었다. 

“백합동산이야말로 오랜 역사를 지닌 빛나는 전통과 강원도의 명문 여학교로서 인격과 덕망이 높으신 잊지 못할 스승님을 모시고 훌륭한 선배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큰 자부심과 긍지와 꿈을 키워온 모교요 어머니와 같은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1994년 12월에 펴낸 《춘여고 60주년 기념집》에서 당시 봉의여중 교장이었던 15회 졸업생 김현옥 씨의 말처럼 춘천여고는 ‘백합동산’으로 호칭됐다. 이처럼 춘천여고의 상징이었던 백합나무는 언제 어떻게 심어진 것이었을까?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지만, 춘천디지털기록관에 의하면 이 나무는 1923년 4월 경남 진주농업학교에서 춘천농업학교 개교 기념일을 축하하며 보낸 나무라고 한다. 춘천여고의 전신인 춘천고등여학교가 개교한 시기는 1934년. 그 이전에 춘천여고 자리에는 1910년 개교한 춘천농업학교가 있었다. 춘천농업학교는 1910년 1년제 춘천실업학교로 설립돼 그해 11월 2년제 춘천농업학교로 바뀌었는데, 1912년부터 1930년까지 교동 옛 춘천여고에 자리했다. 

1회 졸업생인 김정화 씨가 제공해 춘여고 60년 기념집에 실린 학교 준공 당시의 사진.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1회 졸업생인 김정화 씨가 제공해 춘여고 60년 기념집에 실린 학교 준공 당시의 사진.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1968년 3월 1일부터 1971년 8월 6일까지 교장으로 재직한 최봉현 씨는 앞의 60주년 기념집에서 “목백합은 춘여고의 상징이기에 학교 배지도 그 꽃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운동장의 목백합 고목에는 더욱 신경을 썼다…내가 왜 이 나무에 대하여 신경을 썼느냐 하면 일본 등 외지에서 춘여고 출신을 만나면 이 나무 소식부터 묻곤 하였기 때문이다. 개교 이래 남아 있는 것은 이 나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회고했다. 그 무렵부터 매년 열리기 시작한 ‘백합제’도 그가 처음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1930년대 춘천여고 전경. 학교 앞 좁은 도로 오른쪽으로 춘천향교가 보인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제공한 《춘천의 어제와 오늘》(2006) 수록.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1930년대 춘천여고 전경. 학교 앞 좁은 도로 오른쪽으로 춘천향교가 보인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제공한 《춘천의 어제와 오늘》(2006) 수록.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

내년에 90주년을 맞게 되는 춘천여고의 전신 춘천공립고등여학교 설립 운동은 1930년 벽두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도청소재지로서 중등 정도의 여학교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마침 약사리에 있는 도립사범학교가 폐지되고 대신 춘천농업학교가 그리로 이전하기로 결정되면서 비게 된 교동 농업학교 건물에 고등여학교를 설립하자는 여론이 일어났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1930년부터 사범학교 폐지를 계기로 농업학교 이전 방침이 나오면서 농업학교를 춘천학교조합이 양수하자는 논의가 촉발돼 2월 15일 춘천공회당에서 춘천번영회 주최로 시민대회 개최하고 고등여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했다고 보도했다. 《매일신보》 또한 1930년 2월 17일 기사를 통해 “춘천시민 3대 열망” 중 신연강 철교와 춘천공회당 건립은 이미 실현됐고 고등여학교만 남았다면서 고등여학교가 당시 춘천의 주요 현안이었음을 밝혔다. 이렇게 활발한 설립 운동에도 불구하고 춘천고등여학교는 4년 뒤에나 결실을 봤다.

춘천고등여학교는 1934년 3월 6일 정식 인가를 받고 그해 4월 10일 4월 10일 오전 10시 춘천심상고등소학교 내 가假 교사에서 개교식을 열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입학생 50명 중 조선인 입학자는 20명이었다고 보도했는데, 매일신보는 53명의 입학생 중 조선인이 21명이라고 보도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춘천고등여학교는 그해 12월 11일 새 교사 낙성식을 거행했다.

춘천여고 11회 졸업생 권소현(본명 권귀준) 씨는 60주년 자료집에 쓴 ‘모교 60돌에 보내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이제 높고 푸른 가을 하늘

회한의 60돌의 나이

백합나무의 나이테로 인걸은 떠나갔어도 역사는 무궁한 것

밤하늘 비춰주는 백합꽃의 맑음 그대로

별 하나 가슴에 안아라 딸들아

춘여고의 딸들아

목백합은 목련과에 속하는데, ‘백합나무’ 또는 ‘튤립나무’로도 불린다. 미국에서는 ‘yellow poplar’ 또는 ‘whitewood’라고 한다는데, 나무에 피는 꽃은 튤립 꽃을 닮았다. 춘천여고는 2012년 11월, 78년의 교동 역사를 뒤로 하고 동면 만천리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목백합은 춘천시청 별관으로 사용하는 옛 학교터에 남았다. 아마 훼손이 우려됐던 까닭일 것이다.                            

전흥우(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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