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제48호에 실린 ‘경성의 특산’

서울 확장이 화제인 요즘이다. 예전 서울은 어디까지였을까? 생각보다 서울은 넓었던 것 같다. 도심뿐만 아니라 농촌 지역이 함께 있어 다양한 농산물이 나왔던 모양이다. 지금은 강원도 깊은 산에서 나올 법한 송이도 서울에서 많이 나왔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과 계층과 지역이 모여서 서울을 만들었다. 그렇게 커진 서울도 이제 부족해서 주변 지역을 또다시 흡수하려는 것일까? 송이와 배추가 맛있게 익어가던 모습은 사라지고 또다시 아파트와 자동차로 채울 것인지 새삼 묻고 싶다.

1924년 6월 1일 발간된 《개벽》 제48호 ‘조선문화의 기본조사’ 경성호에 필자명 없이 실렸던 ‘경성의 특산’을 통해 당시 서울의 명물이 무엇이었을지 살펴보자.

과실류와 버섯류의 명물

송이와 능금·천도복숭아·앵도·군밤

서울에도 송이가 난다고 하면 시골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악산에서 나는 송이는 예로부터 ‘북송이, 북송이!’ 하고 이름이 높아서 예전에는 궁궐의 진상품이 된 것은 물론이고 일반 사람들에게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북악산은 원래 산이 깨끗하고 지질이 좋은 까닭에 송이가 깨끗하고도 클 뿐만 아니라 향취도 좋아서 평안남도 양덕이나 석왕사, 이원, 신흥, 금강산, 경상북도 영덕 등 소위 송이의 명산지라는 곳의 송이라도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귀한 물건이다.

송이밭으로 말하더라도 보호를 잘하지 않아서 그렇지 별달리 안 나는 곳이 없고 수량도 또한 많다. 북악산뿐만 아니라 남산에서도 나고, 창덕궁 비원 소나무 숲에서도 난다. 이것이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하여 그렇지 명물 중 명물이다. 

그리고 창의문 밖 능금과 천도복숭아(털 없는 복숭아)는 다른 지방에서는 흔하지 못한 경성의 특산품이다. 동소문 내 송동 앵두도 빼놓지 못할 명물이다. 시골에도 앵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송동마을처럼 한 곳에 앵두나무가 수천 그루씩 있어서 다량으로 생산되는 곳은 없을 것이다.

한겨울 군것질로서의 최고의 명성

지금은 다른 지방에도 혹 군밤이 있지만, 서울의 군밤은 역시 과실 중 명물이다. 맛도 맛이지만 군밤 장사의 군밤타령 또한 들을 만하다.

채소의 명물

계절을 타지 않고 늘 사랑받는 식재료 미나리는 어디에서? 왕십리의 미나리

안주의 미나리가 백상루와 같이 평안남도에서 이름이 높고, 남원의 미나리는 춘향의 이름에 뒤지지 않게 전라도에서 소문이 높지만, 서울 왕십리의 미나리처럼 명물은 되지 못할 것이다. 다른 곳의 미나리는 봄철에만 있지만, 서울의 미나리는 전해져 내려오는 동요에 ‘미나리는 사철’이란 말과 같이 사계절 내내 없는 때가 없다.

줄기가 길고 연하기도 하려니와 향기 또한 좋다. 특히 동지섣달 얼음이 꽝꽝 언 논 속에서도 새파랗게 새싹이 난 미나리를 캐는 것은 서울이 아니고는 그 싱싱한 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김장철이 예전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당시 김장의 주 재료인 배추로 이름난 곳은? 연동과 훈련원의 배추

개성의 배추가 서울에서도 이름이 높다. 개성 배추는 크고 연하지만 맛이 서울 것만 같지 못하다. 서울 중에서도 연동과 훈련원 배추는 예로부터 유명하였다. 배추 농사도 많이 하지만 맛이 다른 지역의 것보다 좋다. 그중에서도 겨울에 움 속에서 길러서 시골에서는 아직 밭도 갈기 전에 이른 봄에 새파란 솎음 배추를 시장에 출품한 것을 보면 누구나 싱싱하고 새로운 맛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근래에는 동대문 밖 창신동의 배추도 점차 이름이 높아지고 있다.

이건천(차상찬읽기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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