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후기

김수진 신사우동 독자.
김수진 신사우동 독자.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3주 만에 750만 관객을 동원해 1천만 관객 돌파를 향해 순항 중이다. 사람들은 왜 이 영화에 열광할까. 지금으로부터 꼭 44년 전인 그 겨울의 참혹했던 우리의 정치사는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걸까.

이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즉사해 갑자기 발생한 권력 공백 상황에서 군부 내 전두환의 사조직인 하나회가 그해 12월 12일 밤 나라를 도적질한 아홉 시간을 다룬다. 그런 역사적 비극의 한 조각 퍼즐을 나는 잘 몰랐다. 그 겨울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1980년의 봄을 빼앗겼다. 그들을 제압했다면 1980년 광주에서 국민을 학살한 5·18의 참극도 없었을 것이다.

2023년 12월, 나는 서울의 서쪽 화곡동 봉제산 아래에서 창문 밖으로 아이들의 발소리를 듣는다. 생일선물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정치에 관심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아들과 함께 밤 12시 넘어 들어간 극장에는 아이들이 수십 명이나 눈에 띄었다. 보는 내내 곳곳에서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팝콘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보는 내내 고구마 100개쯤 입속으로 밀어 넣는 것처럼 답답한 기분이었다.

그의 연기는 정말 미쳤다. 배우 황정민은 전두환의 실체,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육사 11기 전두환의 눈빛과 혀를 찰떡처럼 연기했다. 관객은 온몸을 휘감고 혀를 내두르는 차가운 구렁이의 먹이가 되어 통째로 삼켜졌다. 사적 권력 욕망이 모여 국민을 파리목숨처럼 짓밟은 첫 군화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화장실에서 낄낄거리는 비열한 승자의 웃음소리가 극장 안을 흔들어댄다. 우리는 두 눈 뜨고 당한 것이다. 전두환에 대항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외로운 결기,

“네 이놈, 내가 전차를 몰고 가 너희를 다 쓸어버리겠어.”

아홉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역사에 당당한 리더십은 지금 다시 영화를 통해 영웅으로 기억된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는 마지막 100명의 병사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그날의 패배를 위로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정의로운 패자의 기록이 될 것이다. “전두환이 다른 건 몰라도 정치는 잘했어”라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젊은이들도 알아야 한다. 이 영화처럼 우리가 잠들었을 때 도적 떼가 들어와 우리의 가장 소중한 걸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걸어 나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패하면 반란, 성공하면 혁명’이라며 깃발을 세운 그들은 언제든지 또 다른 모습으로 독사처럼 꿈틀거릴 수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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