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상담소를 개소하던 첫해, 중앙로 67번길 54번지를 찾아온 여성이 있었다. 좁은 골목으로 아직 차가운 냉기가 남아있던 봄날, 소매를 여러 겹 접은 셔츠를 거친 그녀가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긴 셔츠를 들어 올리자 압박붕대 아래 먼 나라의 지도처럼 흩어진 푸른색의 타박상, 늑골이 부러진 그녀가 올라오기에 상담소의 언덕은 괜찮았을까.

가슴에 압박붕대를 한 스물네 살의 그녀는 베트남에서 이주한 지 이제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90일이었던 국민 배우자 비자를 한 번 연장했고, 연장 기간은 1년이었다. 체류가 허락된 1년 동안 그녀는 착하고 순종적인 아내로 ‘품행방정’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비자 연장 시 남편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 체류할 비자를 다시 또 연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진 빚과 모국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을 지원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가 밖에 나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직장을 가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 말에 순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국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도 중요했다. 퇴근 후 단 10분도 늦지 않게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회사에 나갈 수 있었다. 

‘박스’를 만드는 곳이었다. 모국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했던 그녀의 경력에 비해 매우 단순한 노동이었지만 좋았다. 매달 모국에 돈을 보낼 수 있었고 가족은 그 돈으로 비가 새는 지붕을 고칠 수 있었다. 그날은 직장에서 회식이 있었다, 모국에서 온 언니들과 수다가 길어졌다. 오랜만에 행복했다. 남편에게는 회식이 있어 늦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밤 10시에 귀가했다. 남편은 일찍 귀가한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귀가하던 그녀를 차량으로 충격하고 흉기로 위협했다. 그날 밤 집을 나온 여성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건은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었고 그녀는 합의이혼 했다. 체류 기간이 끝나 모국으로 돌아가기 전 상담소에 들른 그녀가 물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던 걸까요? 이 모든 것이 제 잘못인가요?”

결혼 이주가 시작된 후 2021년까지 맞아 죽고 떨어져 죽은 이주여성이 언론에 보도된 것만 스물한 명에 이른다. 분명 그녀들은 안전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특정한 일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개인의 일이 아닌, 공공의 일이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주거 외국인이 2.4%가 넘고 미등록자가 40만 명이다. 함께 살아가면서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다.

호치민에서 하루종일 가고도 더 가야 한다는 그곳,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아잉(anh)’이라는 별칭을 선물했다. 그녀가 다시 한국에 온다면 그때는 조금 더 희망 쪽일 것이라고, 베트남어로 아잉(anh)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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