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상무
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상무

로컬푸드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소비자의 인근 지역에서 생산 및 공급되는 농산물이다. 우리말로 풀면 지역 먹거리다. 로컬푸드라는 사회운동적 개념은 1990년대 초 유럽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푸드가 지배하는 시스템에 대항하는 반작용으로 20세기 말 로컬푸드라는 개념이 굳이 등장했다. 로컬푸드는 전통적인 먹거리 수급체계로 회귀하자는 주장이다. 전적으로는 불가능하니 아주 일부라도 말이다.

비슷한 주장은 있었다. 농협은 1990년대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지역 개념은 없고 국산 농산물을 더 아껴달라는 넓은 의미였다. 일본에는 지산지소地産地消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로컬푸드와 거의 같은 개념인데 우리에겐 덜 알려졌다. 아무튼 1990년대 서구의 로컬푸드 개념은 15년쯤 지나 마침내 춘천에도 전해졌다.

외형적으로는 2006년 ‘춘천지역고용포럼’이 지역 민간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2008년에 이르러 ‘사회적경제네트워크’가 출범했고, 먹거리 부문에서는 사회적기업 ‘춘천친환경농산물유통사업단’이 발족했다. 춘천두레생협, 춘천친환경농업인연합회, 춘천시민연대, 춘천여성민우회, 춘천노동복지센터 등이 협력했다. 사실상 춘천의 최초 사회적기업이었고 이후에 ‘봄내살림’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당시는 사회적기업 태동기였고 다른 지역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선구적이었지만, 사업과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았던 봄내살림의 앞길은 장애물로 가득했다. 생산과 소비를 매칭하는 일은 생산계획·관리·보관·유통·포장·배송·정산 등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모든 과정에 적절한 투자가 필요했으나 그럴 여력도 없었다. 여러 품목을 다루고 소비자의 기호까지 고려하는 수급 시스템을 갖춘다는 건 너무도 어려웠다. 3년이라는 노동부 일자리 지원 기간 내에 안정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봄내살림은 40여 가구 뜻있는 시민들에게 주 1회 ‘생명밥상꾸러미’를 전달하고 초중등학교에 춘천산 친환경쌀을 공급하며 초반을 버텼다. 학교급식 공급업체로서 학교가 발주하는 농산물 중에 춘천산 농산물 비율을 높이려고 애썼다. 특히 업체들이 배송을 기피하는 시외 지역 학교 배송을 전담하면서 지역에 기여했다. 시내 학교는 업체들이 경쟁하는데 강촌 너머와 춘천댐 너머 학교는 가려는 업체가 없었다. 나중에는 개인사업체들이 로컬푸드에 뛰어들었고 결국 사업을 접게 되었다. 약 8년에 걸친 시민들의 로컬푸드 실험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춘천의 로컬푸드를 이야기하면서 ‘봄내살림’과 시민들의 노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춘천두레생협이 그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고 시에서 설립한 재단과 농협으로 확장되었다. 주체가 다르고 단절적인 것 같지만, 훗날 역사는 크게 같은 흐름이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시민들의 꿈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타협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또 다른 차원의 꿈을 꾸는 날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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