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새로운 배움을 위해 꿈으로만 꾸던 세계여행에 나섰다. ‘사래울’은 사암1리의 옛 이름인데,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사람이 노래가 되는 곳'이란 의미를 담았다. 2년 동안 유럽·중앙아시아·북부 아프리카를 여행할 계획이다. - ‘사래울’ 부부

세계문화유산인 바르샤바 옛 시가지.
세계문화유산인 바르샤바 옛 시가지.

 

유럽은 겨우 넉 달 정도 여행했지만, 도시마다 박물관과 미술관·기념관·거리 등을 여행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 처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좋은 공연을 만나면 다시 가슴이 뛰고 생기가 되살아난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는 2차대전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게토와 같은 상처도 있지만, 아름다운 도시다. 그 아름다움을 더하는 이유 중 하나는 쇼팽의 도시라는 점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서 쇼팽의 흔적을 만난다. 바르샤바 패스를 사면 시내 박물관과 미술관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시내에서 열리는 쇼팽 피아노 연주회를 관람할 수 있다. 그리고 쇼팽 박물관에 가도 쇼팽 연주회를 볼 수 있다.

쇼팽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전통 악기들.
쇼팽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전통 악기들.
리가 국립 오페라하우스.
리가 국립 오페라하우스.

 

쇼팽 박물관에 갔을 때, 마침 공연을 시작하는 시간이라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젊은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곡들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을 관람했다. 돔 모양의 연주회장 음향시설이 좋지는 않았지만, 쇼팽을 기억하는 공간에서 듣는 피아노 연주회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공연을 보고 쇼팽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다 깜짝 놀랐다. 계단 위쪽에 병풍이 전시되어 있는데, ‘병풍’이라는 한글 이름과 함께 병풍을 폴란드어와 영어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 옆 방에는 우리 전통 악기들이 한글 이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그 악기들을 연주하는 영상을 틀어놓아 관람객들이 우리 전통 악기들의 소리도 알 수 있게 해두었다. 안내소에 조성진의 연주회를 알리는 펼침막이 있어서 쇼팽 박물관에 우리 전통 악기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생긴 것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덕분일 거라 추측했다.

그날 저녁에는 시내 작은 음악실에서 열리는 쇼팽 콘서트에 갔다. 작은 공간이라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감흥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바르샤바에 있을 때 눈물처럼 계속 비가 내려서 계획보다 짧게 머물렀지만, 바르샤바의 쇼팽 연주회들은 아주 인상 깊게 남아있다.

리투아니아 수도 리가에도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우리는 리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햄릿’을 보았다. 우리가 본 오페라 ‘햄릿’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을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긴장감이나 비장함이 덜하고 합창도 없고 아리아들도 짧아서 조금 아쉬웠지만, 배우들이 정성을 다해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날 낮에 리가 시장에서 사 먹은 점심이 탈이 나서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리가에서 보았던 오페라 ‘햄릿’은 배앓이와 함께 떠오르는 추억이다.

마린스키 극장 모습.
마린스키 극장 모습.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로 러시아에 갈 때는 발레공연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처럼 언제 모스크바에 도착할지 확실히 모르는 상태로 티켓을 예매하자면, 일찌감치 매진되는 볼쇼이 극장의 발레공연은 보기 힘들다. 일정이 어느 정도 정해진 다음 예매를 시도했을 때는 이미 모든 좌석이 다 매진되었다. 다행히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공연은 예매에 성공했다.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서 깊은 마린스키 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를 관람했다. 오페라와 발레로 유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은 1860년에 개관했고 5층으로 되어 있으며 1천774개의 좌석이 있다. 그리고 이 극장이 자랑으로 여기는 2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마린스키 발레단이 소속되어 있다. 

‘백조의 호수’ 무대인사.
‘백조의 호수’ 무대인사.

 

공연 날까지 충분히 여유가 있던 우리는 미리 음악을 찾아 들었고 국내 모 광역시 발레단의 공연도 찾아서 봤다. 공연을 보기에 썩 좋은 좌석은 아니었으나 한눈에 무대를 충분히 조망할 수 있어서 넋을 놓고 공연에 매료되었다. 나는 국내에서 발레공연을 볼 때 가끔 졸 때도 있었으나,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발레 동작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숨을 죽이고 몰입하게 되었다. 나중에 발레공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아들은 발레리나들의 토슈즈 소리조차 음악과 맞아들어가더라는 얘기를 했다. 우리가 미리 찾아보았던 국내 광역시 발레팀의 ‘백조의 호수’ 발레공연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이야기 전개와 함께 긴장하고 즐거워하고 두려워하고 흐뭇해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공연은 인터 미션까지 네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때때로 몰입을 해치는 중국 단체 관광객들의 행동이 거슬렸다. 공연 도중 칸막이 사이를 넘어서 옆 칸으로 오고 가거나 잡담하거나 계속 움직여서 산만했다. 다행히도 세 번째 인터 미션 때 공연이 끝난 줄 알고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덕분에 4막은 완전히 몰입해서 즐길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다. 

좋은 공연을 만나면 며칠 동안 여운과 감흥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공연을 함께 보고 들은 우리끼리 나눌 이야기가 많아지고 관련된 음악이나 영상을 찾아 현장의 감흥을 오래 이어나갈 수 있어서 좋다. 여행지에서의 좋은 공연은 여행에 향기와 풍요를 더해줘서 좋다.

글 한정혜 / 사진 안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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