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량 전 광장서적 부사장
류재량 전 광장서적 부사장

요즘 무척 고독하다. 이래저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큰애는 휴학 중이다. 군대를 마치고 학교에 복귀하지 못한 것인데 아비로서 죄책감도 있고 면구스럽기도 하다. 가끔 같이 소주 한잔하면서 세상살이에 관해 얘기하곤 하는데 요즘 주된 화두는 이른바 ‘이준석 신당’이다. 시민운동을 하는 엄마와 평생 책을 파는 일을 하는 아빠를 둔 녀석은 나름 ‘깨어있는 부모’ 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셈인데, 문제는 자칭 ‘깨어있는 자들’의 위선이 뭔지를 일상적으로 보고 잘 간파한다는 점이다. 간혹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발생하는 난감한 때때를 이 영민한 아이가 놓칠 리 없었고, 이 곤혹스러움을 자신의 잘못과 퉁치려는 거래를 종종 주도하기도 했다. 대부분 이 거래의 호구는 부모가 된다. 직업과 별개로 아내나 나나 특별히 더 도덕적인 사람일 리가 없으니까. 같이 사는 건 ‘마눌님’만 어려운 게 아니다. 

“아버지, 요즘 ‘이대남’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어딘지 알아? 디시인사이드야. 현재 가장 화두가 되는 이슈는 이준석 신당이고. 어른들이 망가트린 세상을 저주하고 찾아간 곳이 이준석이란 말이야. 능력 없는 애들이 모여서 사회에 손가락질하고 찾아간 안식처가 능력 없으면 죽으라는 이준석 신당이라는 게 말이 돼? 이런데도 애를 낳으라고?”

능력주의는 부·권력·명예 같은 사회적 재화를 사람의 타고난 혈통·신분·계급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능력에 따라 분배하자는 발상이다. 신분주의를 타파하자는 것인데 두 번의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영국의 노동당이 제안한 이데올로기다. 2024년 한국 보수주의 담론의 시작은 사회주의자들이었던 거다. 능력은 지능(IQ)+노력(effort)으로 만들어지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지능보다 노력을 훨씬 더 강조한다. 당연하다. 지능은 유전자인데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 우리는 이것을 ‘운’이라고 부른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하면 좋아하겠는가!

노력이라는 고속도로에 무한엔진이 장착되면 온 삶을 땔감 삼아 갈아 넣어야 한다. 실패한 자들은 게으름이란 악덕에 빠진 이들이니까. 노력의 무한경쟁을 선명하게 구분 짓기 위해선 문턱을 높여야 한다. 시험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합격자의 수는 줄여야 한다. 자기 구원의 욕망에 실패한 이들은 사회에서 뿌리 뽑히고 쓸모없어진다. 젊을수록, 1인 가구일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상시적 외로움과 자살 충동에 노출되는 확률이 높아지며 정확히 대한민국 20대 남자들의 처지다.

윤석열의 촌스러움과 무능력이 싫어 이준석으로 갈아탔다는 말은 트럼프의 시대가 싫어 레이건이나 대처의 시대를 살고 싶다는 위험한 얘기다. 남들보다 대단한 아빠가 되자는 건 아니다. 아니 뭐 그럴 만한 고매한 인격을 갖추지도 못했다.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경청은 타자가 자유롭게 말하는 공명의 공간이며, 치유의 행위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한 결코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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