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나 전각예술가·이정글씨 대표
이한나 전각예술가·이정글씨 대표

춘천에는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레지던시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옛 기무부대 관사를 창작공간으로 바꾼 ‘춘천예술촌’이고 다른 하나는 춘천문화재단 레지던시 예술소통공간 ‘곳’이다. 나는 2022~23년 예술소통공간 ‘곳’에 입주해 전통서예와 전각으로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전각과 서예가로서 전통에 바탕을 둔 창작활동을 해 왔다. 인십기천(人十己千), 남들이 열 번을 하면 나는 천 번을 노력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많은 시간과 공을 작품창작에 쏟았다. 그러나 전통서예작품이 전시장에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어려웠다. 공을 들여 내놓은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이 멈춰 서지 않고 ‘응~ 글씨구나’라며 지나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 수 있을까, 서예작품을 향유자에게 친근하고 흥미롭게 전달하면서 전통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었다. 지난 일 년간의 활동은 이러한 화두를 풀어나가는 시간이었다.

춘천문화재단 레지던시 예술소통공간 ‘곳’ 입주작가 전시회 ‘물의 나라에서’는 대형작품을 천장에 걸고, 그 사이를 관객들이 지나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해 관객과 작품의 물리적 거리를 좁혀보았다. 춘천문화재단 기획전시 ‘계절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에서는 미디어 기술을 전통예술에 접목해 현대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날 수 있도록 기획하기도 했다.

모두 기존에 관심을 가졌고 시도해보고 싶었던 전시 방식이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막막했던 일들이었다. 춘천문화재단의 매개로 좋은 기획자와 작가들이 연결되었고 함께 고민하며 새로운 전시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전통이라는 본질은 지키면서 현대의 눈높이를 맞추는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작품과 작가 본인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

2023년 한 해 동안 춘천문화재단과 함께 한 전시에서는 전시 기획자·도슨트·타장르 작가의 도움뿐만 아니라 춘천문화재단 공연기획팀과 무대운영팀 감독들의 도움 등 재단의 울타리 안에서 여러 손길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작품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즐거운 작업 시기였다. 

춘천문화재단에서 최근 ‘춘천예술인포럼’을 출범시켰다. 예술인들의 연결을 지원하고 춘천형 예술지원체계를 수립해 예술지원 통합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간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첫 포럼은 조명과 특수효과를 동원해,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과 구성을 다채롭게 꾸민 멋진 포럼이었다. 포럼 중간에는 예술가들의 네트워킹 자리가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다 함께 모일 일이 여간해서는 없는 예술가들이 편안하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다른 갈래의 예술가들과의 소통을 기대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작가들과 안부를 나누느라 짧은 네트워킹 시간이 끝나버려 아쉬움이 남았다. 예술인들이 좀 더 촘촘히 연결되어 연대와 협업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춘천문화재단은 지금껏 많은 공론장을 열어 예술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모았고 그것들을 반영한 지원정책들을 내놓았다. 앞으로도 많은 창작자의 ‘필요’를 채워주어 예술가와 춘천의 예술과 문화를 성장시킬 수 있는 지원을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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