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y okay lang ako dito

최예진 강원이주여성상담소 필리핀 통역상담사
최예진 강원이주여성상담소 필리핀 통역상담사

한국에서 벌써 다섯 번째 겨울을 맞는다. 이번 겨울은 폭설이 잦다. 오늘은 출근해서 상담소 주차장에 쌓인 눈을 밀었다. 지난해 꽃을 피웠던 라일락 나무와 배롱나무에도 눈이 쌓였다. 나무 밑을 지날 때면 가지 끝에 쌓였던 눈가루가 바람결에 떨어졌다. 필리핀에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풍경이다. 필리핀의 어머니와 동생에게 이곳의 겨울 풍경을 사진 찍어 보냈다. 특히 라일락 가지를 흔들어 눈이 떨어지는 모습을 찍었다. 상담소 동료들이 내가 눈을 밀대로 미는 모습도 찍어주어 함께 보냈다. 어머니의 놀라는 모습이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으로 왔다. 

어머니는 지난 11월 한국에 오셨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동안 서로를 방문할 수 없던 차에 방문비자로 어머니를 초대한 것이다. 어머니는 한국의 겨울을 좋아한다. 우기와 건기만 존재하는 필리핀은 매일 비가 내리거나 손톱에 각질이 생길 정도로 건조한 나날의 지속이다. 어머니는 내가 한국으로 시집을 간다고 했을 때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달리 한국에 사돈이 생겨서 좋다고 했던 분이다. 

한국의 겨울을 즐기고 싶은 어머니를 위해 11월에 초대했다. 어머니가 도착한 즈음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일 베란다 밖을 보면서 언제쯤 눈이 오냐고 물어왔다. 눈이 내리지 않는 11월을 보내면서 한국에 온 김에 춘천의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하자고 어머니에게 제의했다. 평소 속 쓰림을 호소하는 어머니를 위해 남편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종합검진 중 수면내시경 검사도 받았다. 어머니는 다른 모든 과정도 신기하지만, 수면 중에 진행되는 내시경검사를 더욱 신기해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이 잠들어 있었는지를 물어왔다. 종합검진 결과 어머니에게는 약간의 위염 증세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의사는 2개월 동안 약을 먹고 잘 치료하면 위염 정도는 금방 치료된다며 외국인이므로 필리핀에 가서도 치료 시 참조하라며 검사 기록을 내주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꼭 내시경검사를 할 것을 권유했다.

어머니는 12월 초에 돌아가셨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나를 안던 어머니의 눈시울이 잠깐 붉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장면을 바라보던 남편이 다음번 겨울에 다시 오시면 된다고, 그때는 꼭 춘천의 겨울 눈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오늘 어머니는 한국에서 겨울눈을 밀고 있는 딸의 안녕을 확인했을 것이다.

Nay okay lang ako dito

어머니 저는 여기 잘 지내고 있어요.

Kayo din  nay sana okay kayo lahat dyan

어머니도 모두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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