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옥 협동조합 퍼니타운 이사장
박인옥 협동조합 퍼니타운 이사장

‘여배우의 품격’, ‘신사의 품격’, ‘대한민국의 품격’, ‘대상의 품격’, ‘정치인의 품격’, ‘영부인의 품격’···. 쏟아지는 기사들 속,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품격’이다. 이 단어는 종종 도시와도 연결돼 시민들의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얼마 전, 카톡으로 전달된 포스터에서 같은 단어를 발견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문화도시 춘천’ 앞에 ‘고품격’이란 단어가 떡하니 붙어버린 것이다. ‘고품격 문화·관광도시’란 문장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함께 일하는 후배에게 어떠냐고 물어보니 대뜸 이렇게 대답한다.

“어디 아파트 분양해요? 광고 카피로도 잘 안 쓰는 단어 같은데, 누가 정했을까요?”

의아함에 이리저리 검색하니 민선 8기 춘천시정 목표 중 하나가 포스터에서 본 바로 그 ‘고품격 문화·관광도시’라는 걸 알게 됐다. 품격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라고 정의한다. 인문 미디어 《더뷰스》의 이상국 편집장은 ‘품격’을 이렇게 해석했다. ‘품’은 사물이나 인간이 본질로서 지닌 ‘좋은 원형(原型)’이고, ‘격’에는 사물이 처해야 하는 위치정보가 숨어있다고 말이다. 대체로 ‘격’은 ‘높이’로 평가되며 ‘그레이드’나 ‘범주’ 따위로 정의된다고 덧붙였다. 후배는 ‘고高’ 품격이 아닌, 그저 오래된 ‘고古’ 품격으로 느낄 뿐이겠지만, 어쨌거나 좋은 의미를 지닌 단어다. 그런데 그 흔한 포스터 슬로건이 왜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걸까? 

‘품격’은 일단 매우 상대적이다. 품격의 높고 낮음을 판가름할 기준은 개개인의 시선에 있다. 《행복의 품격》이라는 책에선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품격 있는 행복을 찾아가길 권유한다. 하지만 행정과 정치, 광고판에서 소비하는 품격은 흔히 귀족적이며 높은 이상향을 떠올리게 한다. ‘고품격 문화도시’의 기준은 무엇이고 또 누가 판단할 것인가? 

도시와 관련된 슬로건은 그 도시의 상징이자 아이덴티티가 된다. 정치와 상관없이 도시가 품은 영성과 철학, 다수의 시민이 추구하는 비전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지속성과 동시에 그 도시만의 고유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검색창에 ‘고품격 도시’를 검색하면 아산시·김해시·군포시·순천시·충주시·수원시·안동시 등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 ‘고품격 ○○도시’를 표방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첨단도시’, ‘스마트도시’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지금껏 춘천시민들은 문화도시를 통해 소중한 경험을 쌓아오면서 도시의 문화를 형성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저마다의 문화적 경험, 개개인의 품격들이 ‘고품격’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뭉개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슬로건 하나로 사업의 기조를 추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경험을 믿고 응원한다. 저마다의 ‘다양한 품격’을 포용할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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