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댁의 서면살이 30년 ④

마쓰다 유카리
마쓰다 유카리

내가 태어난 일본 시골에서는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서 전업으로 논농사를 짓는 집보다 직장을 다니면서 농사를 짓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에서는 집집마다 자동차 2~3대와 이앙기·콤바인·건조기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의 시골 마을에는 자가용도 많지 않았고, 바인더로 벼를 베는 풍경을 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농기계를 사고 서로 도우면서 사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벼를 베고 며칠 지나서 볏짚을 뒤집는 일이 있었다. 남편은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첫 아이를 업고 함께 볏짚을 뒤집었다. 비가 오면 또 볏짚을 뒤집어야 했고, 자꾸 내리는 비에 하늘이 원망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뒤부터 남편의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시집 왔을 때 남편은 한우 여섯 마리를 키우며 옥수수·고추·가지 농사를 지었다. 점차 소를 늘려갈 즈음 솟값은 폭락하고 사룟값은 오르는 바람에 더이상 금전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소를 팔았다. 내가 소를 판 돈으로 비닐하우스를 짓자고 제안해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주변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는 작물들을 추천받아 오이·토마토·표고버섯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하지는 못했지만, 정성껏 길러 새벽에 번개시장에 가져가 팔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내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걸 이용해 물건을 싸게 넘겨받으려는 상인도 있었지만, 믿고 사주는 사람도 있었다. 가져간 농산물을 다 팔 때도 있고 못 팔 때도 있었다. 나로서는 시장에 가는 게 전쟁터 같았다. 그러나 점차 적응하면서 작물을 판 돈으로 꽈배기와 생선을 사는 데 재미를 붙여 왜 할머니들이 열심히 시장에 가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날이 있다. 막내를 임신한 지 8개월이 되는,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비닐하우스가 걱정돼서 쌓인 눈을 털려고 남편과 비닐하우스 천장을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옆 비닐하우스가 “두두두” 소리를 내면서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다행히 일하고 있던 하우스가 무너진 건 아니어서 우리 부부는 무사했다. 무너진 비닐하우스 파이프를 뽑고 펴서 다시 세웠던 일이 무척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감사하게도 생명에 지장이 없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의지하고 함께 노력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한국 농촌에서 지낸 삶은 새로운 도전과 어려움으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했다. 나에겐 한국 농촌의 삶이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자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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