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남은 봉의사.
사진으로 남은 봉의사.

 

오래된 사진 한 장. 어릴 때 엄마와 외할머니랑 함께 앉아 찍은 돌계단. 뒤편으로 연등이 걸려있다. 우물가, 가래나무, 가래 껍질 벗기느라 손이 새까매진 오빠들과 옷에 가랫물 들여왔다고 오빠들을 된통 야단치던 어머니….

어머니는 봉의산 자락에 있던 절 ‘봉의사’의 신도였다. 석가탄일이 되면 엄마와 함께 오르던 봉의사 가는 길. 가래나무가 우거진 푸른 계곡을 끼고 오솔길을 걸어 오르면 작은 우물 옆으로 돌계단이 있고 계단을 오르면 너른 마당이 있었다. 너무나 예쁜 꽃분홍색 연등이 하늘에 가득 매달려 있는 절 마당 옆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있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봉의산에 올랐다.

봉의산 둘레길에서 내려다 본 소양강.
봉의산 둘레길에서 내려다 본 소양강.

 

춘천에 들어서면 도청의 뒷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301.5m의 낮고 정겨운 산. 도심의 한가운데 상서로운 봉황이 나래를 펴고 위의威儀를 갖춘 모습이라 하여 봉의산이라고 불리는 춘천시의 상징. 춘천시민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올라 보았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 진달래가 피거나 가래나무 열매가 익으면 친구들과 막대기 하나 들고 올라 휘어진 소나무 등걸을 말 타듯 타보기도 하고 뛰어다니며 놀던 놀이터였다.

오르는 길은 무척 많지만, 소양로성당 근처에 살던 나는 성당에서 근화초등학교로 가는 내리막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 아래, 산기슭에 납작 엎드려 있던 작은 집을 끼고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는 봉의사 가는 길을 통해 가장 많이 다녔다. 봉의사 앞에 있던 작은 우물은 놀다가 허기 지면 한 바가지 떠먹기도 하고 흐르는 땀을 씻기도 했던 오아시스였다.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기억을 따라가노라니 옛길은 아파트 담장으로 막혀있다. 그 길은 없어졌을까?

궁금하던 차에 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아파트 안에 봉의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정문에서 104동을 지나 107동 앞으로 가니 길게 놓인 철 계단이 보인다. 아파트 담장으로 막힌 길이 그 담장 안에 있었다. 생각 속에 남아 있던 길과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흔적이 남아 있다는 설렘과 반가움. 나뭇잎으로 뒤덮인 좁은 길은 미끄러웠지만, 오르기에 순한 길이다. 어느새 갈색 마른 가지에 파랗게 물이 오르고 봄눈이 움트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진달래가 피겠다.

옛 봉의사가 있던 곳에 자리한 충원사 전경.
옛 봉의사가 있던 곳에 자리한 충원사 전경.

 

저만치 불상이 보인다. ‘좀 예쁘게 세워 두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으로 오솔길을 걷다 보니 옛 봉의사 터에 ‘충원사’로 이름을 바꾼 절의 모습이 보인다. 가래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던 계곡은 흙으로 메워져 너른 공터로 변했다. 눈이 녹은 채로 얼어붙어 빙판인 그곳은 주차장인 듯하다. 어릴 적 우물가 옆 계단은 저렇게 높지 않았는데 무척 길고 높은 계단. 계단 끝 너른 마당은 굳게 닫힌 대문이 막아섰다.

1988년 성월스님이 부임해 선사당과 종각을 개축하고 대웅전·충월당·충월선원을 증축하면서 108계단으로 축조했는데, 옛 충원사의 명맥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사찰 이름을 충원사로 바꾸었다는 설명에 비로소 그 계단이 왜 높아졌는지 알겠다. 아담하고 정겹게 놓여 있던 우물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 옆으로 오르던 등산로가 예쁘게 손질되어 길게 놓여 있다. 그리로 오르면 봉의산성이 나온다. 봉의산성 쪽으로 올라갔다가 둘레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 걸음을 멈춘다.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소양강과 우두벌.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춘천이다.

봉의산 나무들의 눈이 트고 있다.
봉의산 나무들의 눈이 트고 있다.

 

소양강 저 너머로 저무는 빛깔 앞에 서니, 이은상 시인 ‘옛 동산에 올라’ 한 소절이 입안에 맴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료. 

지팡이 도로 짚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료

백경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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