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추곡약수터.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이경애 제공).
1970년대 추곡약수터. 출처=춘천디지털기록관(이경애 제공).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발행한 일간지 부산일보는 1929년 8월 21일 기사에서 추곡약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춘천군 북산면 추곡리는 춘천에서 약 8리 춘천·양구 간 자동차 선의 연장선에 있는 사명산으로 불리는 곳으로, 단풍나무·소나무 등 오래된 나무가 맑게 흐르는 물을 무성하게 뒤덮여 있어 낮에도 늘 어둡고 그윽한 땅이다. 이곳에는 30년 전 발견한 약수의 용출구가 있다. 소화불량·채독증·임병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 경성 또는 황해도 방면에서 체류객이 항상 60~70명에서 100명이 넘는다. 예년에는 4월부터 8월까지 가장 붐비는 모습을 보인다. 용출구는 자동차를 두고 약 3정町을 도보로 오르는 한 협곡인데, 용출구는 극히 작고 바위틈에서 간헐적으로 작은 물거품과 함께 용출한다. 그 양이 1분간 약 12작勺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음용자는 작은 바가지를 가지고 오두막집을 에워싼 모습이다. 그리고 음용자 대부분은 냄비·가마솥을 휴대하고 골짜기 사이에 돌 아궁이를 설치해 여기저기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완전 조선 특유의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현재 이곳의 경영자는 추곡리 황성록 씨로 금년에 43세인데, 5살 어린 시절에 실명한 사람이다."

기사를 보면 1930년대 전후의 추곡약수터 풍경이 눈에 그려진다. 많게는 1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솥단지를 걸고 밥을 지어 먹으며 머물면서 1분에 한 홉 조금 넘는 정도 솟는 약수를 뜨려고 바가지를 들고 줄을 선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매일신보도 부산일보 보도가 나간 지 며칠 뒤인 8월 25일 신문에 “성가가 높아지는 춘천 추곡약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추곡약수는 발견되기는 30년 전인 1890년대 말쯤인데, 유명해진 건 1920년대 말부터였던 것 같다. 그동안 교통이 불편해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인근 사람들만 이용했는데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많이 탄 데다 교통도 편리해지면서 멀리서 오는 피서객과 지병을 앓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1929년 추곡약수 풍경. 《부산일보》, 1929.08.21.
1929년 추곡약수 풍경. 《부산일보》, 1929.08.21.

 

"약수의 성분은 철분과 탄산이 다량으로 있고 유광성硫礦性이 조금 들어있는 듯하며 그 효능은 신경쇠약·위장병·임질·안질·부인병 등과 소화불량에 영험한 효과가 있다고 해 실제 경험한 사람은 삼방약수보다 못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기사는 자동차가 다닐 정도의 도로를 새로 닦아 교통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지만, 숙박할 수 있는 집이 다섯 호밖에 안 되는 것이 무척 불편하다고 전했다. 여기서 말하는 삼방약수는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 삼방리에 있는 약수로 1886년 무렵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다량의 탄산·규산·칼슘·나트륨 등의 광물질을 함유해 만성 소화불량과 신경쇠약·빈혈·성병 등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1929년 추곡약수 풍경. 《매일신보》, 1929.08.25.
1929년 추곡약수 풍경. 《매일신보》, 1929.08.25.

 

"북산면 추곡리에 있는 약수터는 위장병에 특효라고 하며 감초 냄새가 나는 이 약수를 마시고자 서울에서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약수의 매력을 강조하는 말로 “이 약물을 마셔온 사람은 부산에 이사 가서라도 계절이 오면 여기로 찾아오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정기 버스가 춘천시에서부터 왕래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약수터는 약 80년 전 추곡리에 살던 맹인 황성간이라는 사람이 현몽으로 약수가 솟아 나오는 곳을 발견했다."

- 《조선일보》, 1959.07.10.

위 기사에 따르면, 이 약수는 약 1880년 무렵 맹인 황성간이라는 사람이 발견했다. 앞서 부산일보는 1929년 당시 약수터를 경영하는 사람이 추곡리에 사는 43세의 황성록이라고 했는데, 두 사람의 성이 같으니 인척간일 수 있겠다. 그러나 1992년 세웠다는 현재 약수터의 ‘발견내력비’에는 1812년 음력 9월 12일에 추곡리에 사는 김원보라는 사람이 사명산 산신령의 현몽으로 발견했다고 적혀 있다. 이 비는 김원보의 손녀인 김금자·김은자 자매가 세운 것으로 돼 있다. 춘천문화원에서 2010년 발간한 《북산면 사람들》에 수록된 ‘추곡산방’ 주인 박연애 씨나 ‘명신식당’ 주인 백창영 씨 구술에 따르면, 양구 또는 홍천에서 한약방을 하는 사람의 아들이 발견했다고도 하는데, 이쯤 되면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 종잡을 수 없다. 

아무튼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니 그중에 사기꾼들이 없을 리 없다. 1937년 8월 초 40대의 수상한 남자들이 20대 전후의 어여쁜 여자들을 데리고 몰려와 약수터를 찾은 사람들을 상대로 도박과 사기 등을 벌이다 춘천경찰서에서 출동한 경관들에게 일당 6명이 검거된 일도 있었다(매일신보 1937.08.25.).

춘천시가 2015년부터 약수터 일대를 ‘관광휴양형 명품마을’로 조성하겠다며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공원을 조성했지만, 보상을 둘러싸고 일부 주민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10년 가까이 흉물로 방치된 추곡약수터. 폐건물 철거공사를 끝내고 올해 공원 조성을 완료한다고 하니 추곡약수터가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전흥우(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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