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주민자치가 실현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주민자치에 대한 담론을 꾸준히 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 순서로 황종규 동양대 교수의 글을 싣는다. - 편집자 주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는 국가 주도의 자원 집중과 인적 자원의 동원체제를 통하여 최대한 능률적 성장을 만들면서 세계가 놀라는 ‘위대한 한강의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우리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수도권 초집중과 소득과 자산 격차로 인해 ‘성공한 국가와 행복하지 못한 국민’이라는 질곡을 겪고 있다. 참여하는 시민은 있으나 자치하는 주민은 없는, 선거 중심의 정치로 왜곡되어버린 민주주의에 불신과 염증만 키우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선진국에 태어난 세대는 그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이 사회 변화의 에너지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미래 자산을 차지한 앞 세대의 욕심 채우기에 동원과 수탈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회 문제에는 본질적 원인과 파생적 원인이 있기 마련이지만, 존재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본원적 해결책의 모색을 회피하게 만드는 원인에는 사회의 민주적 자치 역량이 마비되었거나 기득권에 대한 기회비용이 사회의 공감 능력을 무디게 만들어 버린 것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어떤 학술적 설명보다 우리 안에 내재화된 해결사 또는 구원자로서 ‘중앙’에 대한 강한 아우라가 DNA에 새겨진 결과가 아닐까? 날개 잃은 새처럼 ‘자치 의지’는 퇴화하고 몸집 키우는 것이 유일한 해법인 줄 아는 청맹과니가 된 결과는 아닐까?

격차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뿐만 아니라 지금 더 절실한 것은 마을과 공동체의 주인인 주민이 주권자로서의 결정권을 가지고 공동체를 책임지는 주체임을 밝히는 자기 선언과 연대의 몸짓이다. 일상의 공간인 동네가 자발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데 로컬과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중앙의 보조와 지원에 기대어 해결할 수 있는가? 자치의 관점에서 보조는 주민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조금을 받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지출이 아니라 보조 한도만큼 지출을 만드는 중앙의 동원 체계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한 지 오래되었다.

지방자치가 중앙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자치단체의 역할을 한정하는 것처럼 지자체는 주민을 서비스 대상으로 규정하고 필요한 것을 부탁하면 주민 참여이고 절실한 요구가 있으면 애절하게 청원해야 하는 존재로 객체화시키고 있다. 

중앙집권의 구조가 지속하는 한 중앙-지방의 종속관계, 내부 식민지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고, 주민의 행복은 고사하고 사회의 안녕과 미래가 심각하게 위협받게 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는 ‘국가 > 지방정부 > 주민’으로 권력의 크기가 거꾸로 선 비정상의 상태를 ‘주민 > 지방정부 > 국가’로 바로잡는 ‘정상적인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주민’이 스스로 부지런히 날갯짓을 해야 할 때다. 어려울 때마다 주권자들이 나섰던 것처럼 자치의 주인인 주민이 스스로 ‘자치 의지’를 드러내고 마을과 공동체의 주체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자치제도의 개혁과 ‘주민에 의한 자치’를 몸소 실천할 때다. 주민자치를 규정하는 법률도 권력 엘리트의 시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제정될 때 주권자에게는 권력을, 선출된 엘리트에게는 주권자의 통제를 강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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