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량 전 광장서적 부사장  
류재량 전 광장서적 부사장  

잘 모르는 사람의 무덤에 헌화했다. 목발을 짚은 허름한 사내가 등장하자 말끔한 사람들의 입가에 옅고 온화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경외를 품은 행동처럼 보였는데, 마치 청룡영화상에서 배우 안성기가 공로상을 받았을 때 후배 배우들의 마음가짐 같아 보였다. 사람들은 그를 ‘서림 형님’이라고 불렀고 몸이 좋지 않아 보였던 그이의 건강이 쾌차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환목. 어릴 적 강변에서 불발탄 폭발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뒤 평생 장애를 딛고 살았던 사람. 1986년 강원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 ‘춘천서림’을 인수해 10여 년 동안 학생들의 든든한 형님이자 벗으로 함께했던 사람. 그는 2년 전인 2022년에 영면했다. 돌이켜 보면 ‘서림 형님’은 이 사회에서 단 한 번도 주류의 삶을 살지 못했다. 장애인이자 무학無學이었고, 비혼非婚에 타지他地 사람이었다. 나는 그이가 어떤 연유로 사회과학서점을 운영했는지 들은 바 없으나, 그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의 질곡을 온몸으로 저항했던 청년·학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열 평 남짓한 서점의 골방에서 학생들은 라면을 끓였고, 찌개를 덥혀 소주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곳은 혁명의 전초기지이자 실패한 사랑에 몸서리치던 거대한 에너지의 소굴이었을 것이다. 거기엔 여물지 않은 개똥철학과 어쭙잖은 낭만들이 서로 기지개를 켜며 타인에 대한 연민과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저마다의 반란을 꿈꾸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있었다.

단 한 번도 주류를 비껴간 적이 없는 삶도 있다. 92학번이면 동시대 학생들에게 미안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유치원생이었는데 누구한테 미안하냐?”라던 한동훈 같은 이들이다. 내가 미안하다. 1592년에 안 태어나서 임진왜란에 마음의 빚이 없다.

이자들이 몸담은 정당의 어르신들은 대대손손 개인의 안위와 권력의 중심부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 때는 경찰을 앞세워, 아버지 때는 군인들의 총으로, 이제 그의 아들은 법이라는 칼로 세상을 유린하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예외 없이 가해자였다. 나도 그 많던 의장님들의 변신과 권력욕이 몸서리치게 싫다. 전국에 퍼져있던 수많은 골방에서 최소한 타인의 삶을 걱정하던 ‘서림 형님’들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너넨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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