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통해 죽음을 배우다 ③
삶의 역사는 곧 다중상실의 상흔

아침 창밖 풍경은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팔십을 넘기고서는 부쩍 기운이 떨어지신 엄마에게 전화로 아침 인사를 나눈다. 날씨 얘기와 입원 중에도 까탈스러운 아버지 이야기 끝에 서울 외삼촌이 곧 엄마를 모시러 오실 거라 전한다. 오늘의 특별한 일은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의 제사다. 엄마가 막 큰오빠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하신다. 그 후,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 뒤를 따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살면서 몇십 번, 몇백 번은 했을 이야기를 처음 하시는 것처럼 하시다가 “내가 또 이런다, 시간 넘 빼앗았다”로 급하게 마무리를 하시곤 끊는다. 엄마는 얼마나 비통하고 힘들었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나의 엄마가 새삼 애처롭다. 엄마 연세쯤 되면 삶의 길이만큼 상실의 상흔들과 함께 살아간다.

노년기는 변화와 상실의 시기로 신체적·사회적, 그리고 심리적인 영역에서 나타난다. 먼저, 신체적 상실은 건강기능의 약화와 크고 작은 질병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엄마, 오늘 뭐 했어?”라는 질문에는 언제나 각종 병원이 등장한다. 안과·치과·한의원 등 때로는 한 곳, 때로는 여러 곳이 하루에 다 등장한다. 치통으로 고통스러운 어느 날, 엄마는 어떻게 다 견뎌냈을까?

시력 저하로 눈이 침침해짐을 느낄 때,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기능의 약화는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부고를 받을 때, 아들과 사위를 먼저 보낸 우리 엄마는 얼마나 많은 상실을 경험하고 견뎌내셨을까 헤아리기도 어렵다. 우리의 삶은 원하지 않아도 상실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른 상실이 기다리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에릭슨은 노년기의 발달과제를 자신의 지난 삶을 통합하고, 자신의 삶을 의미 있었다고 해석하며 앞으로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 하였다. 노년기는 변화와 다중상실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반추하고 의미를 찾는 귀중한 시간이다. 이 시기는 지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의미를 찾고 발견하며 때로는 새로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삶을 통합하고 생의 의미를 드러내게 한다. 

다중상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회복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지지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필요한 심리적 도움을 적극적으로 찾고, 새로운 취미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인지적으로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언장 작성, 장례식 계획, 생활환경의 정리,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준비 없이 태어나는 탄생의 순간과는 다른 준비된 죽음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치통 (이나영)

한밤중 치통으로 거실을 배회하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

어쩌지? 약은 먹었어? 병원은?

해드릴 게 없다.

그리고는 다시 잠든다.

새벽에 강렬하게 찾아오는 고통, 치통으로 잠이 깬다.

다시 잠들지 못하고 여명을 맞는다.

아~ 엄마도 이렇게 아팠구나! 

외로웠구나!

무엇으로 대신할 수가 없구나!

고통으로 세월의 흔적을 확인한다.

엄마의 새벽 발자국 소리를 느낀다.

고통으로 삶의 넓이와 깊이를 보탠다.                              

 

이나영(생사학실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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