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새로운 배움을 위해 꿈으로만 꾸던 세계여행에 나섰다. ‘사래울’은 사암1리의 옛 이름인데,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사람이 노래가 되는 곳'이란 의미를 담았다. 2년 동안 유럽·중앙아시아·북부 아프리카를 여행할 계획이다. - ‘사래울’ 부부

바투미 옛 시가지.
바투미 옛 시가지.

 

바투미는 흑해 주변에 있는 조지아 최고의 휴양도시다. 새해를 코앞에 두었지만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 끝이 훈훈했다. 바투미는 조지아 어떤 도시와도 달랐다. 마천루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으며 국제도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따뜻한 바투미에서 쉬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튀르키예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조지아 정교회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이었다. 아쉽지만 크리스마스에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 튀르키예를 향해 국경을 넘었다.

우리처럼 자동차로 유라시아를 여행 중인 지인이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며 바투미에서 만났던 룩자르 씨를 소개시켜 주었다. 룩자르 씨는 일하는 틈틈이 우리를 보러 왔고 날마다 전화해서 도울 것 없는지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폈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해결해 주었다. 첫날 어디에 주차하고 머무를지 모를 때 여동생 집 골목에 차를 대고 물과 전기를 보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과묵하지만 살뜰히 챙겨주는 룩자르 씨에게 마음 써 주어 고맙다고 하니 친구라서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며 조지아인 특유의 “노 프라블럼!”이라고 한다. 지인 소개를 받고 처음 만났는데 친구로 여기고 마음으로 뭐든 도우려 했다.

차가 뒤틀리거나 코너를 돌 때마다 떵떵거리며 큰 소리가 나는데 어떤 정비소에서도 고칠 수 없었는데 룩자르 씨가 소개해준 이반 씨의 정비소에서 고칠 수 있었다. 수리비가 많이 들고 새 부품을 구해야 할 것 같은 우리의 걱정과 달리 자동차 앞바퀴 부싱이라는 곳 볼트를 조여서 간단히 고쳐주었다. 차를 고쳐주고도 수리비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도울 수 있어서 아주 기쁘다며 담배 두 갑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반 씨도 언제든 정비소 마당에서 주차하고 물과 전기를 보충할 수 있게 해주었다. 휴일 가족과 나들이 갔다 오는 길에 들렀다며 그곳에서 딴 자몽과 채소들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바투미는 기후나 식생이 조금 더 따뜻한 제주도 같다. 어느 날 골목을 지나다 귤나무들이 예뻐서 사진 찍느라 천천히 가는데 마당 안에서 보던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귤을 따가라고 했다. 들어가니 뒷마당으로 데려가서 맛난 귤을 알려주고 귤을 한 봉지 가득 따주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초코파이 몇 개밖에 없었다. 하루는 차박하고 있는 바닷가에 바람이 몹시 불어 골목 안에서 이불 먼지도 털고 청소기도 돌리고 맥스팬 환풍기의 찌든 기름때도 닦았다. 한참 청소 중에 골목 옆집 젊은 아주머니가 귤‧오렌지‧레몬을 한 보따리 가지고 왔다. 미처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낯선 우리에게 아무렇지 않게 마당에서 딴 과일들을 나눠주고 갔다.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크기는 작아도 다 익어서 딴 귤과 오렌지 맛이 기가 막혔다.

 

조지아 사람들은 무척 낙천적이라 함께 있으면 즐겁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와 말을 건다. 또 누구든 어떤 부탁이든 “오케이 오케이, 노 프라블럼!”이라고 말하고 친절을 베푼다. 그래서 조지아에서는 차에 물을 얻는데 한 번도 어려움이 없었다. 곤란할 때마다 바로 여러 명이 모여들어 해결해줬다. 조지아 사람들의 오지랖과 인정은 정말 못 말린다. 그래서 나는 사람 좋은 조지아 사람들을 조지아의 매력 중 첫손가락에 꼽는다.

바다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는 바투미 공항 옆 바닷가에서 여러 날 묵었다. 흑해에서 부자간 물수제비 대결도 하고 비행기 뜨고 내리는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차 청소도 하고, 여기저기 차량 정비도 하고, 노을도 즐기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 감자도 구워 먹으며 천천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바투미 전통요리 하차푸리나 다양한 조지아 음식들을 찾아 먹었다. 우리는 조지아 국민빵 쇼티도 즐겨먹었다. 쇼티는 쫄깃하고 짭조름한 맛이 나는데, 셋이 먹어도 충분한 어른 팔뚝만 한 쇼티 하나가 500원도 안 된다.

‘신이 음식상을 들고 가다가 카프카스산맥에 걸려 넘어지면서 음식상을 쏟은 곳이 조지아다’라는 말이 있다. 조지아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조지아에는 맛난 음식이 아주 많다.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들렀던 음식점마다 특색있고 맛있는 음식과 하우스 와인이 있었다.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지만, 나는 치즈가 든 배 모양의 하차푸리가 제일 맛났고, 남편은 조지아식 순대 요리 쿠파티를, 아들은 마늘과 우유에 닭구이를 졸인 슈쿠메룰리를 제일 맛나게 먹었다. 물론 그들의 자존심 하우스 와인과 함께. 나는 조지아 음식들을 조지아의 매력 두 번째 손가락에 꼽는다.

하차푸리.
하차푸리.
쿠파티.
쿠파티.
 슈쿠메룰리.
 슈쿠메룰리.

 

《춘천사람들》 지난 호에 글로 썼던 조지아의 온천들이 내가 꼽은 조지아의 매력 세 번째 손가락이다. 그리고 8천 년 역사의 조지아 와인과 만찬을 주관하는 타마라의 건배사에 따라 만찬 참석자들 모두가 “가우마르조스!”라며 와인을 함께 즐기는 문화를 조지아의 매력 네 번째 손가락이다. 조지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사철 흰 눈을 머리에 인 웅장하고 신령스러운 카프카스산맥의 산들과 그 높디높은 산자락 곳곳에 자리한 자그맣고 소박한 수도원들이 그다음 다섯째 손가락이다. 이밖에도 길을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옛 성이나 수도원들, 동굴 도시들, 착한 물가,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날씨, 수많은 외침을 겪어낸 역사, 개발이 덜 되어 자연이 살아있는 모습들 등 인상적이고 매력이 넘치는 곳이 바로 조지아다.

글 한정혜 / 사진 안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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