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화 강원이주여성상담소 중국어통역상담사
손홍화 강원이주여성상담소 중국어통역상담사

‘귀안歸雁’은 고향을 떠난 시인 두보가 지은 망향 시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첫 설을 보내자니 새삼스레 두보의 시가 가슴에 닿는다.

봄에 와 있는 만리 밖의 나그네는 

난이 그치거든 어느 해에 돌아갈까 

강성의 기러기 

똑바로 높이 북쪽으로 날아가니 애를 끓는구나

친정어머니는 갓난아기일 때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 만주로 이주했다. 노년을 우리 집에서 보내신 외할머니와는 추억이 많다. 중국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집도 있지만,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집도 많다. 외할머니는 공무원으로 일과 살림을 병행하는 어머니 대신 살림을 맡아주셨는데 명절에는 설음식을 해 주셨다. 특히 아버지는 외할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만두를 좋아하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할머니의 만두를 빚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만두를 빚으며 외할머니가 부르시던 ‘노들강변’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어머니가 푸른색 타일이 붙은 부엌에서 “무~우~정 세월” 하면서 만두소를 빚던 생각이 난다. 아주 어린 나는 오래되어 색이 바랜 부엌 타일에 걸터앉아 어딘가 쓸쓸해 보이던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잡고 칭얼댔다. 치마꼬리에서 풍기는 향긋한 기름 냄새에 취해 칭얼거림이 더해질 즈음 어머니는 얼른 내 입에 만두소 한 덩어리를 넣어주셨다. 어머니의 치마꼬리 뒤에서 보이던 풍경이 기억난다. 부엌 조그만 창문으로 고향의 마당과 붉은 꽃이 피던 화단, 멀리 들판을 지나 보이던 산 너머 노을이 생각난다.

그 집을 제일 먼저 떠난 사람은 언니였다. 그리고 오빠와 내가 대학을 가면서그 집을 떠났다. 3형제가 모두 떠난 그 집에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부모님은 한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일제강점기에 부모님 등에 업혀 조국을 떠난 분들이라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다. 이제 다 성장하여 일가를 이룬 우리 형제들은 모두 흩어져 산다. 나는 한국에, 오빠는 중국에, 언니는 미국에서 산다. 어쩌다 전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고향 집에 대한 기억과 외할머니로부터 전수된 만두에 대한 손맛을 나눈다. 

명절 내내 이주여성 커뮤니티에는 그녀들이 만든 음식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이곳에 오기 위해 두고 온 그리운 것들이다. 그중 하나가 명절 음식과 음식을만들던 부엌과 마당, 그곳의 사람들이다. 저녁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딸과 만두를 빚었다. 만두를 빚다 말고 딸이 내 무릎을 베고 눕더니 “엄마 냄새가 좋다. 서울 살 때 이 냄새가 참 그리웠는데” 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태어난 곳을 떠난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내 딸도 그럴 것이다. 딸이 그리워할 ‘귀안歸雁’ 속에 내 존재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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