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댁의 서면살이 30년 ⑤

아이들이 고3·고1이 되는 해에 서면 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서 청소 일을 맡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기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일해본 적이 없었고, 언어와 문화의 벽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청소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아니었고, 혼자 생각하면서 순서대로 하면 되는 일이여서 다른 일보다는 마음 편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익숙하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빨리빨리 일하지는 못해도 꼼꼼하고 깨끗하게 청소하려고 노력했다. 일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청소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쓰러질 것만 같은 학생을 마주쳤다.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었기에 그 학생이 너무 걱정스러워 보건실에 데려다주었다. 그 후로 복도에서 그 학생을 보면 괜찮은지 물어보고, 그 외에도 몸이 안 좋아 보이는 학생들이 있으면 안부를 묻기도 하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을 전공으로 하는 아이들은 일본어에 관심이 많아 내가 일본 사람인 걸 알면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그냥 청소하는 사람이지만 학생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 몇 번 일본어를 가르쳐본 일이 있어서 봉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학교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아 점심시간에 일본어 교실을 시작하기로 했다. 학생 다섯 명에게 단어부터 시작해서 회화까지 가르쳤다. 그 외에도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도토리현 학생들이 방문하면 공동수업을 진행할 때면 통역 봉사를 통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도 했다. 학기 말에 하는 학교축제 때는 일본어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학생들이 일본 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기모노 입어보기, 일본 전통놀이 체험, 도라야끼(일본식 단팥빵)와 타코야끼 만들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수능 때는 엄마의 마음으로 작은 선물을 준비했고, 졸업식 때는 훌륭한 작품을 발표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학생들과 1년을 함께 하며 처음에 했던 걱정은 모두 잊고 정말 즐겁게 일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학교 선생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인연이 되어 지금도 연락하며 식사를 하기도 한다. 애니고를 다니면서 받은 최고의 선물은 그 선생님들과 맺은 인연이다. 한국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던 청소 아줌마, 게다가 일본인을 편견 없이 한 인간으로 대해준 선생님들 덕에 애니고에 다녔던 시기가 참 행복했다. 가족·친척·동네사람이 아닌, 처음으로 나 자신 스스로 맺은 인연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했다.

남편이 하는 아스파라거스 농사를 돕기 위하여 애정하던 애니고에 다니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때 애니고에서 보낸 5년은 새로운 나를 찾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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