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상무  
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상무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로컬푸드는 춘천산 쌀이든 감자든 먹거리 실물로 귀결된다. 감자 한 알에 하나의 농식품이 생산되고 유통되어 소비되는 전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지만, 사실 감자는 그저 감자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발전하고 확장된 것이 ‘푸드플랜’이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 시민사회 특히 먹거리운동과 농민운동 진영은 로컬푸드에서 진보하기를 바랐다. 시장에 방치되고 지역으로 쪼개진 ‘농農’과 ‘식食’의 문제를 국가가 총체적으로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랐다. 거기에 이름을 붙인다면 먹거리계획, 즉 푸드플랜이다.

농업 생산만이 아니라 소비까지 아우르며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소비·폐기 등 전 단계를 하나의 선순환 체계로 묶어 관리하는 계획은 자못 절실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푸드플랜은 흐지부지 여태 수립되지 못했다. 그러면서 지역 푸드플랜을 수립하는 쪽으로 가다 보니, 비싼 연구용역만 난무했고 지자체 간의 장벽도 넘지 못했다.

2019년 춘천시 푸드플랜 연구용역이 완료되었으니 당시 춘천시가 나름대로 발 빠르게 시작은 했던 셈이다. 춘천지역먹거리통합지원센터가 농협 위탁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재단법인으로 운영하게 변경된 것도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농협이 운영했다면 현재의 직영보다 더 복잡하고 더 높은 장벽 뒤에 따로 존재했을 것이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먹거리위원회도 처음에는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무튼 3년 정도는 그럭저럭 푸드플랜이 회자되며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나 어느새 흐지부지.

지금 춘천 푸드플랜은 캐비닛 어딘가에서 구겨져 있다. 지역먹거리통합지원센터가 학교급식을 중심으로 역할을 맡고 있고 로컬푸드 매장도 곳곳에 펼쳐져 있으니 된 것 아니냐고 누군가 반론을 펼 수도 있겠다. 그런 현재의 노력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중간 이상은 된다. 그러나 참 아쉽다.

첫째, 원래 푸드플랜은 로컬푸드가 유통 중심에 머무는 경향을 극복하려는 시대의 비전이었다. 결국, 국가는 책임을 방기했고 지역에 떠넘겼다. 시장과 고정관념에 포박된 농업과 먹거리를 국가가 먼저 풀지 않았으니 지역은 플랜의 일부만 간신히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부터 아쉽다. 아니다.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둘째, 푸드플랜 대신 푸드테크가 언급되는 현실이 황당하면서 아쉽다. 푸드플랜이 인문·사회·문화·정치를 토대로 한다면, 푸드테크는 공학이고 산업이다. 춘천시민들의 미래 비전을 고려한다면 감히 비교될 수조차 없다.

셋째, 이게 가장 아쉽다. 춘천 시민사회가 춘천시와 함께 시작하면서 살짝 맛보았던 꿈과 비전이 잠시 사라진 것. 당연히 아예 사라진 건 아니고 언젠가 다시 되살리면 된다. 그때는 시장과 연구용역업체가 아니라 시민들이 주도해야만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잠시지만 공부하면서 같은 꿈을 꾸었다는 사람들의 경험이 남아있으니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정반합의 발전을 믿는다.

www.prism.go.kr 행안부 정책연구관리시스템에 들어가면 2019년 춘천 푸드플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볼 수 있다. 시청 홈페이지에서는 도무지 못 찾겠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니 말이 너무 거창하고 낯설다. 다음에 춘천시민들이 푸드플랜을 이야기하게 되는 날에는 남들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말로 대화할 수 있기를. 나의 꿈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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