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도서관 뒷산을 걸으며 기형도와 에밀리 디킨스를 읽다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 영화 ‘조용한 열정’(2016).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 영화 ‘조용한 열정’(2016).

 

길 위를 서성거렸던 시인이 있다. 1960년 3월에 태어나 만 29세의 나이로 1989년 3월에 운명을 달리한 시인 기형도. 첫 시집 출간과 생일을 며칠 간격으로 앞두고 세상을 떠난 시인의 시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에 실린 작품들과 적게나마 기록에 남은 그의 생애를 찾아 읽으며 어떠한 완결성을 느꼈다. ‘이것이 천재 시인의 삶인가?’ 하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정거장에서의 충고’), “죽음이란 가면을 벗은 삶인 것”(‘겨울·눈·나무·숲’)이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시인이 운명의 결정에 따라 작품 활동을 완벽히 끝마쳤다는 사실조차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는 1988년 11월 ‘잎 속의 검은 잎’ 시작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르는 거리 위를 서성이며 ‘희망’과 ‘희망의 중단’, ‘살아있음’과 ‘죽음’을 오갔던 그에 대한 추억은, 그가 적었던 “추억은 이상하게 중단된다”(‘추억에 대한 경멸’)라는 문장과 달리 중단된 적 없다.

기형도 시인처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던 또 하나의 시인. 은둔하는 산책자,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생활을 지속했지만, 자신의 집에 있는 정원을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자연의 탐구자였던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시에서는 소생과 소멸이 한 곳에서 펼쳐진다.

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

            - 에밀리 디킨스

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

인간의 가슴은 듣고 있지

허무에 대해 -

세계를 새롭게 하는

힘인 ‘허무’ -

시집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에서처럼 그녀는 정원을 산책하며 자연 속에서 “벌의 속삼임”과 “바람 속에서 달콤하디달콤하게 들려오는” 희망을 듣고, “버섯의 일생”을 관찰하고 그곳에서 “소멸할 권리”를 얻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봄에 걷기 좋은 시립도서관 뒷산 산책로, 유아숲체험장도 있다.
봄에 걷기 좋은 시립도서관 뒷산 산책로, 유아숲체험장도 있다.

 

지난달 시립도서관 뒤편 산책길을 걸어 올라가 봤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작은 노천 무대와 숲 체험장과 전망대가 있는 산책로를 걸어보니 좋다. 전망대에 올라 산으로 둘러싸인 시내 풍경을 보며 춘천에서는 어디서나 산이 보여 좋다고 생각했다. 걷기 좋은 곳들도 많다. 3월엔 걷고 책을 읽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시인의 시를 찾으며 보내보는 건 어떨까.

기형도 문학관에서는 이달에 시인의 35주기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형도 문학관에서는 이달에 시인의 35주기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수빈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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